[스타이즈백] 김택용도 두려워했던 '땡 히드라'의 겜블러, 심소명

김종민 기자 2021. 3. 1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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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스포츠 김종민 기자]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에서는 프로토스가 저그를 상대로 약열세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김택용은 완성형 프로토스로 불렸다. 현란한 멀티 태스킹과 정신 없는 견제, 타이밍 러시를 기반으로 신인 김택용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볼드모트'를 상대해 3-3 혁명을 이뤄낸 바 있다.

그랬던 김택용이 아직 신인이었던 때 두려워 했던 저그가 있다. 참신한 전략의 '겜블러' 이자 '땡 히드라 타이밍 러시'로 대표되는 '히통령' 심소명이다.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심소명은 김택용이 '볼드모트'와의 일전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줬고, 김택용은 그의 플레이에 "두려움을 느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참신하고 변칙적인 전략과 심리전에 강했던 저그 심소명의 경기를 만나보자.

■ '히통령'의 독창적인 플레이, MSL 준우승까지

심소명 선수는 2003년 방송 무대에 데뷔해 SG 패밀리(이후 팬택, 위메이드 폭스 팀명 변경)로 합류했다. 데뷔 시즌부터 MSL에서 임요환을 이기고 본선에 진출해 파란을 일으켰다.

다만 그의 테란전은 프로토스전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양대리그 합산 6승 18패의 25%에 머물렀다. 반대로 프로토스전은 12승 7패의 63%에 이른다.

심소명 선수의 특징은 심리전을 기반으로 한 깜짝 도박수였다. 상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타이밍 러시를 노리거나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전략을 준비해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3지 선다의 반섬맵 '몬티 홀'에서 테란을 상대로 전진 해처리의 '꿈의 조합' 가디언-히드라를 최초 선보인 것도 심소명 선수다. 전진 해처리로 테란의 진출 경로를 봉쇄하고, 3가스를 기반으로 빠른 테크를 올리는 방식이다.

몬티 홀의 전진 해처리,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빠른 테크로 준비한 가디언,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이 빌드는 2007년 다음 스타리그에서 김준영 선수가 변형태 선수를 상대로 패-패-승-승-승 역스윕을 이루는데 사용된다. 

심소명 선수는 2006년 프링글스 MSL에서 '볼드모트'에게 패해 준우승했는데, 올라가는 과정에서도 강민-박용욱을 특유의 변칙적인 러시로 제압하며 화제를 모았다. 비록 준우승이었지만 그 이전에는 팀 리그 위주로 활약했던 그였기에 많은 박수를 받았다.

심소명의 트레이드 마크는 단연 히드라 러시다. 곰TV MSL 박영민과의 경기에서 상대의 전략을 '노 레어' 히드라로 맞받아치며 승리하는 경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박영민 선수는 전진 포토 러시에 이어 게이트웨이를 지으며 저그의 본진을 압박하고 성큰을 강제한 상황. 저그는 블리츠X에 있는 센터 지역 멀티를 앞마당 대용으로 사용한다. 박영민이 질럿을 모아 압박했고, 막기에 급급한 저그는 드론을 많이 늘릴 수 없었다.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이에 심소명은 레어를 올리지 않고 히드라리스크 덴을 올려 병력을 생산한다. 저그가 무난히 테크를 올렸다면 질럿-드라군 위주로 저그를 밀 수 있었을 박영민이었으나, 테크를 포기하고 히드라를 선택한 심소명은 지상 병력을 막아내고 역러시로 승리한다. 

노 레어 히드라를 준비,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히드라 러시로 게임을 끝내는 심소명, 사진=MBC게임 캡처

프로토스가 확보된 지상 병력을 견제용으로만 사용하고, 테크를 올리며 앞마당을 가져갔다면 몰랐을 게임이다. 공격적인 전략에 맞서 심소명은 특유의 승부수로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고 그대로 게임을 끝냈다.

■ '승부사 근성' 살려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

심소명은 선수 시절 '겜블러' 라는 별명을 살리기라도 하듯, 프로 게이머 은퇴 이후에는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한다. 2008년 '아시아 포커 투어' 대회에서 538명 중 9위를 하고, 2010년 10월까지의 누적 상금이 18만 달러, 한화 2억원에 이르기도 했다. 

이후 잠시 스타크래프트2 게이머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기록은 남기지 않았으며 다시 포커를 주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후 1남 1녀를 두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정보가 전해지기도 했으나, 2020년 이후 근황은 대중에게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비록 명확한 근황이나 행보는 시시각각 전달되지 않지만, 어디서든 승부사 기질을 살리고 있을 그의 소식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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