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강원택 "LH 폭탄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 보선 이후 보수 기회 열릴것"

2021. 3.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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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판사 탄핵·LH사태.. 여당·文정부 무리수로 민심 이탈 자초
정치권력 독점 속 견제 기능 상실한 사회.. 공공부문은 낙하산 천지
국힘, 새리더십 만들 골든타임.. 당대표 경선과정서 이미지 쇄신해야
강원택 서울대 교수 고견 인터뷰.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레거시(유산)가 보이지 않아요. 후대가 '문재인은 무엇을 했나'라고 물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적폐밖에 없어요. 국회 다수의석에 얼마 전까지 자신과 당의 높은 지지율, 거기다 충직한 친문 세력에 야당까지 무기력으로 받쳐줬는데 실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지금부터 내년 3월 20대 대통령선거 때까지 한국은 정치의 계절로 접어든다. 첫 이벤트가 4·7 보궐선거다. 여야 모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절대 절명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이 말은 국민이 정신 바짝 차리고 선택을 해야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정치의 계절에 한국 현실정치와 정치제도를 밀착 분석, 비판해온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부터 고견을 들었다.

강 교수는 대학 강단 뿐 아니라 신문 칼럼, 강연, 저서 등을 통해 현장에 대한 촌철의 시각과 빼어난 글쓰기로 많은 팬을 갖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정치계절에 맞는 정치 대중서를 내겠다고 한 말에 꽂힌 것도 그의 정치진맥의 영험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첫 일성으로 LH 직원들의 조직적 투기의혹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가 지난 4년 승기를 누렸던 진보좌파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뒤집어보면 지난 4년여 '죄인'이 되어 패배의식에 빠졌던 보수우파에게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는 얘기다.

"그동안은 견제 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 한 세력의 독무대였어요. 공직자들의 투기의혹은 그 아래 독버섯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켰고 윤석열 총장 사직까지 상승작용을 하고 있어요. (…) 같은 생각으로 똘똘 뭉친 정권으로부터는 신선한 정치가 나올 수 없어요. 그들에게 다름은 '그저 저들의 생각'일 뿐이지요. 같은 사고에서 동종 번식된 정책은 건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문 대통령이 쌓아온 업보 때문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문 대통령의 폐쇄적이고 협소한 인력풀이 특히 문제"라며 "앞으로 1년 환골탈태 않으면 문 대통령은 후대애 '적폐'라는 단어와 함께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보수우파에 대한 채찍도 잊지 않았다. 강 교수는 "LH사태, 윤석열도 결국은 스스로 얻은 기회가 아니라 주어진, 반사이익"이라며 "양극화, 집값폭등, 디지털 산업으로의 대전환 등 사회적 숙제에서 보다 유연한 자세가 절실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11일 서울 새문안로 문화일보 1층 오가다 미팅룸에서 가졌다.

대담=이규화 논설실장

-LH 직원에 이어 지자체 공무원과 도의원, 국회의원으로 투기 의혹이 번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공정이라든지 정의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지난 4년 동안 실제 이뤄진 내용을 보면 '우리 편은 괜찮다'는 생각만 주입시킨 것 같아요. 그게 사회적으로 나쁜 사인을 준 거죠. 그 틀 안에 있게 되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거예요. 지난 정부에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훨씬 더 많을 사람들을 공기업이나 관련 부서에 낙하산으로 내려 보냈어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대표뿐 아니라 1차 내부 견제자인 감사나 이사들도 다 한통속이니까요. 그런 구조 하에서 직원들도 역시 그런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데 이 당연한 규범이 무너졌습니다.

"구조적으로 본다면, 견제의 기능이 상실된 사회라는 거지요. 야당이 허무하게 무너지면서 정치권력이 한 세력에 의해서 독점되다시피 한 상황이기 때문에 긴장을 안 하게 된 겁니다. 아무래도 공적인 일을 담당했던 영역에서는 비슷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과거에 법적인 형태의 절차를 밟았던 부서의 직원들은 잘못하면 그 다음 정권에서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경험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런 경험이 없는 거죠. 모든 것을 다 나눠놨기 때문에 우리 편 아니면 상대방 편이니까, 언론에서 문제제기를 해도 '저건 상대방이니까 저렇다. 우리 편이 아니니까 저렇다'고 하니까 견제기능이 작동을 안 하는 겁니다."

-정권이 공직에 큰 해악을 끼친 셈이군요.

"그런 기능이 작동을 안 하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공직, 공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굉장히 느슨하게 만든 겁니다. 도덕성 측면에서 문제를 많이 야기할 수 있는 거죠. 검찰 관련된 부분도 많이 약화된 측면도 있고요. 그 모든 것들이 합쳐서 지금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에는 공직사회 일탈이 한두 사람의 개인적 일탈이었는데, 이번에 드러난 LH 투기의혹 같은 경우는 직원들이 차명도 쓰지 않고 그것도 공동으로 조직적으로 투기를 했다는 점에서 충격이에요.

"그만큼 의식이 느슨해졌다고 봐야겠지요. 도덕의식이 없는 거죠. '한탕하고 가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LH직원이 '너희도 이 안에 들어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내부에서 자정 청렴운동을 100만 번 1000만 번 해도 아무 소용없었다는 겁니다. 국가조직도 기업조직도 마찬가지인데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안에 있어야 조직이 긴장감 있게 돌아가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데 그게 사실은 다 풀어졌지요. 공기업은 이익을 낸다는 부담도 없는 조직인데 말이죠. 더 느슨해지는 거죠."

-갈라진 사회라고 말씀하셨는데, 교수님 경험상 과거와 비교하면 그 정도가 어떤가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인데요, 예를 들어 제가 어디 특강을 가면 사람들이 이렇게(팔짱을 끼고 가슴을 뒤로 빼는 자세를 취하며 설명했다) 바라봐요. 왜 이러겠어요? '저 놈은 어느 쪽인가?' 하는 의미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하는 얘기가 있어요. '저는 학교에서 한국정치를 가르친다. 어느 쪽을 편향되게 가르치면 안 된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얘기하려고 하고 오늘 드리려고 하는 내용도 그런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그럽니다. 저라고 색깔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지만, 그러나 이렇게는 바라보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웃음) 그만큼 지금 갈라져 있어요. 그러다보니 사실은 중간에서 타협을 하거나 서로 양보를 하거나 하는 것이 정치인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더구나 이게 나쁜 관행을 만들 수 있거든요. 민주당이 영원히 다수의석을 차지하겠어요? 다음에 또 바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생각을 않는 것 같은데요.

"민주당이 2004년 152석을 얻었지만 그 4년 후 81석(통합민주당)에 그쳤거든요.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 (민주당이) 하고 있는 일들을 그 때(민주당이 소수당으로 바뀔 때) '니들 이러지 않았느냐'라고 다수 의석을 차지한 세력이 똑같이 할 수 있단 말이지요. 그러면 한국정치는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정치에서 완전히 피아만 있는 구도에서는 자리만 바뀌지 그런 일은 반복되겠죠.

"그래서 저번 선거법 개정할 때 다당제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안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주장했어요. 만약에 과반의석이 어느 정당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양보가 필요하고 타협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가버려서 걱정이 됩니다."

-대의민주제에서 절대 다수의석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이나 5·18특별법 개정 같은 일은 절대 다수의석으로 밀어붙이지 않고서는 결코 법제화될 수 없다고 보는데요.

"시민적 자유의 제약을 많이 받게 되는 거지요. 단순한 벌금이 아니라 징역을 살아야 된다는 거 아니에요? 5·18 특별법 같은 경우는 학문적 영역에 놔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말이 안 되는 것을 보면 틀렸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거고, 그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형법이라든지 하는 기존 틀 속에서 해결하면 되는 거지요. 마치 그것을 신성의 영역처럼 만들어 놓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 처벌 등 언론관련 법 개정안도 여당은 계속 추진할 뜻을 밝혔는데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분 나쁘면 걸면 되는 거예요. 저는 저게 언제까지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끝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이제 더 나가기는 상당히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번 보궐선거가 굉장히 중요한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 거라고 봐요. 갤럽조사를 보면, 이미 민주당 지지도가 가장 낮은 기록을 보이고 있고, 또 LH 건이 (영향이) 굉장히 클 거라고 보거든요."

-이미 LH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집 문제 때문에 굉장히 예민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데, 저런 부정한 방법으로, 더구나 말도 너무 뻔뻔스럽게 하고, 책임자가 현 국토부장관이니 모양이 더 안 좋죠. 범죄인데 그런 의식이 없는 거지요. 이건 굉장히 심각한 일입니다. 내부 조직 문화라는 게 그렇게 돼 있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거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발본색원한다고 했는데요.

"이번 기회에 공기업 관련 부분의 임용이라든지 내부의 거버넌스 같은 일은 손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공적인 성격이 있는 분야라서 공기업이 하라고 만들어놨는데 저런 식의 행태가 나온다는 것은 그 안에서 윤리적 덕목이라든지 공적의식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고 또 오랫동안 누적된 문화의 탓일 수도 있습니다. 또 각 정권마다 나눠먹는 전리품으로 생각했던 폐습도 작용한 거지요, 물론 이번이 특히 심하지만."

-공공부문 개혁은 과거에도 제기돼왔는데요.

"과거 MB(이명박) 정부가 출범 직후에 그걸 하려고 했는데 광우병 촛불 터지면서 실기를 했죠. 어느 정부든 개혁을 임기 초반에 안 하면 못합니다. 공기업 개혁 같은 경우는 대통령의 의지가 수반되지 않으면, 노조도 데모하고 반발이 심할 수 있는 부문이니까 힘듭니다. 정책, 명분, 설득, 자원의 동원 등이 가능해야 하니까요. MB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 때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죠."

-제도적 미비로 허송세월을 하는 건가요.

"우리 사회가 10년 가까이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고 봐야지요. 기본소득을 말 하면서 나눠주는 이야기만 하는데, 사실 일반적인 가구에서는 사교육비만 절반으로 줄여줘도 복지혜택보다 훨씬 큰 혜택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대학도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고요. 지금 우리 사회에 과제가 엄청 많죠, 애 안 낳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게 다 연결돼 있는 문제거든요."

-여당이 생각이 없다면 여당을 설득할 야당이라도 정치력이 있어야 하는데, 다 알다시피 국민의힘은 그럴 힘이 없잖아요.

"저는 지난번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 특히 수도권에서 압승은 문재인 대통령이 싫었던 사람들도 여당을 찍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여당이 싫어서 야당을 쳐다봤는데, 여기엔 황교안이 있는 겁니다. 못 가는 거예요. 지금 중요한 것은 대안세력이 없다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2017년 대통령 선거, 작년 국회의원 선거가 사실은 보수가 정치적으로 벌을 받은 거거든요. 지방선거까지 포함하면 세 번의 선거에서 벌을 받았지요. 그러니까 20대 국회는 2016년 출범했기 때문에 그해 가을에 터져 나왔던 촛불 집회나 탄핵 이전에 구성된 거잖아요. 원천적으로 지난 20대 국회는 탄핵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번 21대 국회는 거기서 벗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자기 정치생명도 걸려 있어 예민하게 움직여야 될 수도권 의원들이 거의 전멸했단 말이에요. 지금 남아있는 있는 의원들은 안전한 지역구이고 매우 보수적인 지역구 의원들이죠. 그 구성이 참 나쁜 거 같아요."

-21대 국민의힘의 지역적 기반을 보면 교수님 말씀하시는 '한계'라는 것이 무언지 짐작이 갑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 민주주의나 한국정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이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봐요. 또 탄핵과 관련됐던 박근혜 정부의 책임으로부터도 이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은 된 것 같아요."

-이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일차적으로는 보궐선거가 될 거 같고, 두 번째는 그 이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물러나고 당 대표 선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이 돼요. 저는 지금 야당이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상(非常)이 계속 정상적인 상황이었어요. 계속 비대위원장이 바뀌면서 당을 이끌고 왔어요. 비상이라는 것은 진짜 비상일 때 쓰는 거 아니에요?(웃음) 제가 볼 때 문제가 많은 정당입니다. 그래서 이번 당 리더십부터는 정상화해야 합니다. 당 대표부터 잘 뽑아야 하고 새로운 면모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리더가 돼야 하고, 그 리더가 2년이든 몇 년이든 주어진 임기 동안 당을 잘 가꾸어 갈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교수님은 그와 관련 국민의힘에서 어떤 변화의 기미를 보십니까.

"움직임은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초선 중심으로 움직임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타이밍 중 하나가 저는 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낼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 대표와 당권이 이원화돼 있는데, 새로 선출되는 당 대표라도 대통령후보가 결정되면 후보에 가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당권과 대통령 후보를 나누는 것은 여러 가지 편의상,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고, 정치적 타이밍을 활용하기에도 편해서 한 겁니다. 한국정당들을 보면 과거 그런 방식을 유지해왔어요. 1960년대 신민당 시절부터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를 나눴잖아요. 대통령 후보 윤보선, 당 대표 유진산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정치적 타협을 하기가 쉬운 데도 원인이 있었다고 봐요."

-우리가 내각제 국가는 아니지만 내각제에서는 당 대표가 곧 행정부 수반이니 당권과 대권을 함께 갖고 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당 운영의 효율성 측면은 한국정당들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지금 한국 정당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당 리더에게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공천 등 이권이 걸려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그러다보니 당 전체가 망가지는 것 같아요. 각자도생을 하는 거지요. 나는 내 가게만 잘 되면 되는 거예요. 본사는 상관없고요. 전체로는 망해가고 있는데, 구멍가게 하나 운영하면서 나는 괜찮다고 하는 상황이어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 심한가요?

"저도 제일 궁금한 것이 '보수야당 내에 위기감이 얼마나 공유되고 있느냐, 절박함이 얼마나 있느냐'는 겁니다. 그게 제일 중요해 보여요. 만약 위기감과 절박함이 공유되고 있다면 모습이 드러나죠. 그러나 그동안은 웰빙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게 사실이고요. '괜찮아' 라는 분위기가 당을 망가뜨려 놓았지요."

-보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내년 대선 승리의 교두보가 될까요.

"저는 야당이 이긴다는 표현보다는 여당이 패배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아직까지 야당이 자력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집권당과 문재인 정부가 문제가 많다는 데 대해 사람들이 공감하기 시작한 데 따른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거라고 봐요. 문재인 정부에서 계속 무리수가 나오고 있잖아요. 가덕도 문제도 그렇고 이번에 LH 건은 계속 커질 것 같고, 윤석열 총장이 물러난 것도 사람들 눈에는 도대체 검찰개혁을 왜 하겠다고 하는지에 대한 취지가 다 사라져 버렸어요. 아무튼 (윤 총장을) 밀어내고, 힘 빼고 이런 형태로 갔었으니까 국민 입장에서는 다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겁니다. 타이밍 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집권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크지요.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이기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지지율도 그렇고 오세훈 안철수가 단일화가 되면 이길 가능성은 높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변화의 시작은 되겠죠."

-'변화의 시작'이란 무슨 의미지요?

"계속 패배해왔던 데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다는 의미지요. 여당의 패배에서 얻는 승리가 아니라 자력으로 얻는 승리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이미 정치권의 상수가 됐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변화에 윤 총장이 촉매가 될 수 있을까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건 맞는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 중요한 것은 보수의 가치거든요.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대표하느냐에 대한 건데, 아직까지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해보여요. 예를 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죠, 경제적 양극화라든지, 아무리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나와도 취직자리가 없어요. 로봇이나 AI가 대체해 가기 시작하고요. 시대적 변화는 이렇게 되어가고 있잖아요. 반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동남아나 중국으로 가고요. 세계화의 문제, 4차 산업혁명의 문제, 그밖에 구조적인 문제로 양극화가 쉽게 해결되기 어렵게 되어가고요. 또 이번 정부에서 집값을 왕창 올려놔서 집에 대한 문제도 있고요. 또 기존 교육제도를 넘어 좀 더 질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은 거고요. 여러 가지 산적한 시대적 문제가 많이 있잖아요. 애를 낳고 싶어도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안 낳는 거고요. 그런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나 고통에 대해서 보수가 그동안 무얼 이야기 해왔느냐 살펴보면, 별로 없어요."

-'공감하는 보수'가 돼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예, 웰빙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해요. 태극기 집회에 나오는 분들도 양보를 좀 하셔야 해요. 영국 보수당사(보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를 내면서 결론에 썼던 게 그건데요,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은, 보수는 체계적인 이념이나 철학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바꾸고 싶은 사람은 왜 바꿔야 하는지 설명을 해야 되거든요.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보여줘야 된다는 거지요. 진보는 체계적인 무언가가 필요해요. 반면, 보수는 기존의 질서나 기존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사람들은 체계적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지금 보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제일 중요한 것은 유연해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킬 것을 그대로 지키겠다고만 하면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아요.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까. 그럼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관리된 형태로 끌고 갈 수 있느냐는 겁니다. 저 친구들한테 맡기면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무질서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질서 있는 변화를 확보하자는 겁니다. 그게 보수주의입니다. 그러면 질서 있는 변화를 하려면 권력을 가져야죠. 보수가 자기 것을 지킬 수 있는, 질서 있는 변화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권력을 갖는 거죠."

-현재 한국의 보수가 집권 의지가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영국 보수당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권력을 잡기 위한 노력에 정말 눈물겹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한쪽은 너무 경직돼 있고 한쪽은 자기들 것만 지키겠다고 하고 있거든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저는 윤석열 현상이 갖고 있는 의미는 그동안 패배의식에 눌러져 있던 보수 세력이 뭔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데 있다고 봐요. 여전히 저는 궁금한 것이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대표하는 가치는 뭐지?'라는 겁니다. 아무 것도 없어요, 지금은. 윤석열이 뜨게 된 것은 윤석열이 가진 어떤 가치 때문이 아니라는 거지요. 분위기에 편승해서 여기까지 와있는데, 나중에도 계속 갈 수 있는지는 봐야지요. 아직까지는 저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 시대의 아픔을 보수가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국민에게 비친 그간 보수의 이미지는, 실은 교수님 말씀 같이 그렇게 친절한 모습이 아니었어요.

"지금까지 보수의 이미지는, 특히 젊은층이 갖고 있는 보수에 대한 이미지는 '지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잘난 사람들, 우리에게 관심이나 있어?' 이런 거였거든요. 지지율에는 밀어내는 요인과 당기는 요인이 있는데, 지금 윤석열도 마찬가지지만, 보수가 기대하는 것은 밀어내는 요인에만 기대는 거죠. '문재인이 못 한다' '저 사람들, 정말 너무 해 먹는다' 이런 밀어내는 요인은 있는데, '보수한테 가면 이런 면을 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당기는 요인은 미약하다는 겁니다."

-그래도 지난 4년 이래 지금이 보수에게 가장 큰 기회가 온 때가 아닌가요.

"그동안 너무 무기력했으니까 이번에 보궐선거와 윤석열 지지율 상승을 계기로 스스로 돌아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국민의힘의 새 대표에 참신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러면 좋지요. 세대도 내려가고 안 알려진 인물일수록 괜찮을 수 있죠. 그게 중요한 변화의 모멘텀이 될 것 같긴 해요."

강원택 교수는 한국정치, 정당론을 연구해온 학자로 특정 정당에 구체적 조언을 많이 했을 것 같았지만, 손사래를 쳤다. "정당과 관련된 일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했다. 그와 관련해 현실 정치의 참여를 제안 받은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강 교수는 왜 없었겠느냐며 시인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꺼렸다.

-강단의 정치학자들은 현실정치계로부터 자문과 조언을 부탁받는 일이 적지 않을 텐데요.

"MB정부 때인데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신문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권력자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문 글 쓰시는 분들의 역할이잖아요. 당시 '노무현 정국'도 있었고요. 그래서 세게 썼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박형준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내일 VIP랑 학자들 몇 분이 만나기로 했다고. 가서 MB를 봤죠, 당시 송호근 선생님 등 7~8분인가 모였어요. 모두 돌아가면서 말씀하시는데 다들 세계 말씀하시더라고요. 오늘은 (대통령이) 듣기만 하고 얘기는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마지막까지 한 말씀도 안 하고 듣기만 했는데, 그게 나중에 중도실용으로 전환되는 기점이 된 거죠."

-아, 정책 전환이 있었군요.

"사실 청와대는 주변의 사람들도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거나 혹은 대통령 생각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만 있게 되거든요. 다른 이야기를 듣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자리를 마련해서 의견을 들으려 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를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에게 안타까운 것은,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또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좀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안 된다는 겁니다. 주변 구성원 자체가 생각이 너무 비슷한 사람들이고 기본적으로 생각과 시각의 차이가 없는 거지요. 그 안에서 논쟁이나 입장의 차이가 드러나기 어려운 겁니다. 또 그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논의도 충분하게 일어나지 않는 거죠."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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