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들이 광고를 받은 사실을 명확하게 알리지 않고, 정상적인 콘텐츠인 것처럼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행태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른바 유튜브 '뒷광고' 논란이다. 방송사들은 주요 뉴스 시간에 이 '뒷광고'가 유튜브 이용자들을 기만하는 행태라며 유튜버들을 질타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이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소비자 문제 고발로 유명한 유튜버 '사망여우'가 방송사들의 ‘홈쇼핑 연계 편성’을 지적한 영상은 조회수가 180만을 넘길 정도로 화제가 됐으나 이 문제를 보도하는 방송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건강식품' 제조업체 등에서 협찬을 받아 관련 식품을 방송에 소개하고, 동시에 홈쇼핑 채널에 연계편성되는 행태에서 자유로운 방송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건강 교양 프로그램에서 홍보 중인 식품, 주변 홈쇼핑 채널에서 팔려
'방송-홈쇼핑 연계편성'은 특정 식품을 홍보하는 방송사의 프로그램과 홈쇼핑 채널의 편성 시간을 비슷하게 맞추는 변종 광고 수법이다. 방송사는 건강식품 업체에서 협찬 등의 형태로 돈을 받고, 해당 업체 제품의 원료가 되는 식품의 효능을 선전한다. 이때 주변에 있는 홈쇼핑 채널에서는 협찬 업체의 제품을 판매한다.
연계편성에 주로 활용되는 건강정보 프로그램들은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구성으로 진행된다. 보통 방송 초반에는 혈관, 피부, 관절 등과 관련한 각종 건강 문제를 거론한다. 방송이 중반을 지나면 특정 건강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식품’이 등장한다.
이 무렵 주변 홈쇼핑 채널에서는 해당 식품을 원료로 제도한 건강 식품을 팔기 시작한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홈쇼핑은 한동안 상품 판매를 계속한다. 보통 홈쇼핑 방송이 방송사 건강정보 프로그램보다 20~30분 정도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난다.
원료, 성분, 효능 등 방송에서 선전한 식품의 장점을 홈쇼핑에서도 똑같이 강조한다. 겉으로는 교양 프로그램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건강 정보 제공을 빙자한 뒷광고인 셈이다.
채널A '나는 몸신이다', TV조선 '내 몸 사용 설명서' 등 대부분 회차 연계편성
뉴스타파와 언론인권센터가 함께 구성한 '광고의 그물망' 프로젝트팀의 모니터링 결과, S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의 건강정보 프로그램이 대부분 홈쇼핑 채널과 연계편성된 사실이 확인됐다.
채널A의 ‘나는 몸신이다’는 지난해 말 한 달 동안 재방송까지 포함해 18번 방송됐는데, 한 번만 빼고 모두 홈쇼핑 채널과 연계편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TV조선의 ‘내 몸 사용설명서’도 한 달 동안 재방송을 포함해 9번 방송됐는데, 9번 모두 홈쇼핑과 연계편성됐다.
모니터링 기간 동안 JTBC의 '미라클 푸드'는 9번, MBN의 '알약방'은 7번 방송됐는데, 모든 회차가 연계편성됐다.
지상파에서는 SBS의 '좋은 아침', MBC '기분 좋은 날' 등의 프로그램에서 홈쇼핑 연계편성이 확인됐다.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에 한계... 시청자 권리 침해받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가 식품업체 협찬을 받고 프로그램에 관련 식품을 홍보할 경우 협찬 사실을 고지하도록 하고, 이를 방송사 허가 재승인 때 조건으로 내걸었다. 뉴스타파는 SBS와 4개 종합편성채널 등 5개 방송사가 이런 조건부 재승인을 받은 뒤 협찬 고지를 얼마나 했는지 분석했다.
5개 방송사들이 2021년 1월 한 달 동안 고지했다고 밝힌 건강기능식품 협찬 방송은 모두 345건이다. MBN이 10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채널A가 76건, JTBC가 67건, SBS가 51건, TV조선은 49건이다.
TV조선은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는 매달 140건 정도 협찬을 받은 것으로 고지했는데 9월부터는 수치가 뚝 떨어졌다. TV조선이 지난해 9월 이후 고지한 협찬 내역을 보면 대상 프로그램이 굿모닝 정보세상과 명심보감 등 두 개뿐이다.
그러나 뉴스타파와 언론인권센터의 모니터링 결과, 이 두 프로그램 이외에도 TV 조선이 방송한 '건강한 집', '내몸사용설명서', '알콩달콩', '알맹이' 등의 프로그램에서 지난해 9월 이후에도 거의 모든 회차에 걸쳐 홈쇼핑 채널과의 연계편성이 발견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식품 분야에 한정해서 협찬사실 고지를 의무화했지만, 이 최소한의 조치마저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방통위 규제망의 한계는 더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유료케이블 'tvN'의 건강식품 연계편성도 드러났다. tvN이 수요일 아침 9시에 방송한 ‘가족의 재탄생’은 건강 문제와 식품 소개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건강정보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4회차부터 8회차까지 같은 CJ계열사인 CJ오쇼핑과 연계편성했다. 방송 협찬도 받고, 계열사 홈쇼핑 매출도 늘리는 방식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1월 종영됐다. 그러나 3월 현재까지도 재방송을 통해 홈쇼핑 연계편성을 계속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재승인 권한을 가진 방송사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 보도 기능을 갖춘 방송사들이다. 주로 예능, 드라마 프로그램 등을 방송하는 tvN같은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협찬 고지를 의무화할 방법이 없다. 종합편성채널의 건강정보 프로그램이 케이블 방송 채널에 판매돼 방송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제 연계편성이 일어나는 범위는 훨씬 넓지만 방통위 관리감독 범위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언론인권센터 윤여진 상임이사는 협찬 형태로 제작되는 연계편성 방송으로 인해 시청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과 (광고성) 협찬이 구분되지 않았을 때의 문제는 두가지라고 볼 수 있어요. 하나는 그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거죠. 또 하나는 시청자를 너무 상업적으로만 본다는 거예요. 방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건 정보, 알 권리, 여가 즐기기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시청자가) 상품을 보고 소비해야 하는 사람으로만 간주된다면 사실 시청권에 굉장히 큰 침해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 -윤여진/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뉴스타파 김강민 kangminq@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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