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평생교육을 말하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2021. 3. 18.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1972년 유네스코 국제교육발전위원회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교육개혁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는 ‘존재를 위한 학습(Learning to Be)’을 발표한다. 이 문건 작성은 68혁명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에드가르 포르가 주도했다. 그가 교육부 장관이던 시절 프랑스의 대학은 극도로 폐쇄적이고 엘리트 중심적이었으며 교수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소르본 대학에서 시작된 68혁명은 이런 낡아빠진 교육 관행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혁명이 일어난 지 다섯 달 만에 의회는 고등교육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법안을 발의한다. 그 핵심은 대학 구성과 거버넌스를 혁신하여 자율적이고 개방된 국립연합대학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 포르가 있었다. 유네스코는 그런 포르에게 글로벌 교육개혁을 위한 보고서 집필을 주문한다.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교육과정의 목적과 양식의 총체성이라는 개념 없이 교육개혁을 찔끔찔끔 하는 방식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각 부분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전체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포르 보고서가 내놓은 교육개혁의 핵심전략은 바로 학습사회와 평생교육이었다. 교육은 그 범위를 생애 전반으로 확장하고 접근 기회를 개방하며 학생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으로 재규정되었다. 그런 교육을 이 보고서는 ‘평생교육’이라고 불렀고, 그런 교육이 가능하도록 새롭게 구축해야 할 사회적 플랫폼을 ‘학습사회’라고 했다.

포르 보고서가 단지 성인교육이나 비형식교육만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교육을 중시하면서도 다양성을 확보하며 학습자 중심으로 생애단계별 교육기회를 보장하는 데 주력하였다. 평생교육의 출발점으로서 유아교육을 강조하고 초등 의무교육을 보편화하는 한편, 평생 동안 학습한다는 점에서 너무 이른 나이에 인문계와 실업계로 계열을 나누는 것에 반대했다. 중등교육은 교양교육에 매진해야 한다고 보았고, 고등교육은 성인 계속교육과 연계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포르가 말한 개혁을 위한 ‘전체적 비전’은 바로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학습을 교육의 공적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평생교육은 이런 흐름의 산물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흘렀다. 알게 모르게 포르 보고서가 제안했던 새로운 교육혁신장치들은 어느새 우리 삶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사내대학, 원격대학, 대학 개방 등을 통해 비엘리트 계층을 대학에 수용하는 정책에서부터 정보통신 혹은 무크 등 비대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방법, 혹은 학점은행제나 경험학습인정제도 등 새로운 방식으로 학점 및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 등 포르 보고서가 평생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한 지혜는 이미 많은 부문에서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점에서 평생교육은 아직 절반의 성공에 머물고 있다. 학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교육적 시공간을 확장하는 성공적인 시도들도 있었던 반면, 다른 한편에서 보면 학교 2중대라고 불릴 만한 교육의 왜곡상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생애전반의 성장을 지향하는 교육개혁을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했다. 또한 여전히 68혁명이 해체하고자 했던 구체제 교육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지금까지 학교는 지식의 대량 복제를 위해 고안된 학습공장이었다. 인간의 뇌에 미리 프로그램된 지식과 역량을 대량 복사함으로써 사회적 동일성과 중복성을 강화하는 장치였고, 그 안에서 인간은 미리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뇌에 이식당하는 숙주 같은 존재였다. 이를 위해서 학생은 동일한 과제를 ‘실수 없이’ 수행하는 지식노동자가 되어야 했고, 교육과정은 모든 학생이 동일하게 숙달해야 할 표준화된 지식 목록과 다름없었다. 학생의 성취도는 주어진 지식을 얼마나 ‘정확히 복제해 내었는지’를 통해 평가되었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미래교육과정은 구세대가 집어 넣은 프로그램의 합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탐색해 나가는 실천 과정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포르 보고서가 꿈꾸었듯이, 학교 단위를 넘어 모든 생애단계에서 수행과 실천 중심의 학습이 영속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적 교육체계가 필요하다. 사족이지만, 최근 인공지능 학계에서 ‘평생학습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인간이 프로그램해준 대로 연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제를 찾아 학습하는 자기주도적 딥러닝을 일컫는 말이다. 기계에도 평생학습을 강조하는 마당에 하물며 인간에게 구세대 학교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