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그림] 16세기 조선 검둥이 vs. 18세기 일본 검둥이
봄날 꽃나무 아래서 강아지 세 마리가 한가로이 놀고 있다. 누렁이는 단잠에 빠졌고, 흰둥이는 방아깨비를 물고 장난을 친다. 시선을 장악하는 건 윤기 반들반들 흐르는 검둥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 안경테를 두른 듯한 묘사가 슬며시 미소 짓게 한다.
16세기 조선 화가 이암(1499~?)의 ‘화조구자도(보물 1392호)’다. 왕실 종친 화가인 이암은 터럭을 한 올 한 올 묘사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번지는 채색 기법으로 천진난만한 강아지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하마터면 북한으로 갈 뻔했던 그림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구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초기 동물화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정립한 이암의 작품이 17~18세기 일본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성과가 나왔다. 유키오 리핏 하버드대 교수는 “이암의 강아지 그림은 17세기 초 이미 일본에 들어와 유통되면서 에도시대의 저명한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고, 다양한 아류작을 파생시켰다”며 일본 화가 5인의 작품을 예로 들었다.
18세기 일본 문인화가이자 하이쿠 시인으로도 알려진 요사 부손(1716~1784)의 ‘구자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특히 왼쪽 위 강아지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는 구도, 색의 음영, 자연스럽게 번지는 기법까지 ‘화조구자도'와 매우 흡사하다”며 “이암의 영향을 받은 개 그림의 화풍은 18세기 중후반 교토 화가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다. 19일 열리는 한국미술사학회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강아지 애호: 일본 에도시대 이암 회화가 남긴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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