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투기 완판' 정권의 민낯

주춘렬 2021. 3. 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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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사태 靑·국회·지자체 등 확산
헛발질 대책, 투기 도화선 작용
수사 혼선 거듭하다 특검 가닥
망국적 투기에 국민 고통 가중

문재인 대통령이 확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를 언급하며 “부동산 적폐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시장 안정에 몰두했을 뿐”이라고 했다. “우리 정치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고도 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2020년 1월 신년사)이라던 종전의 호기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과거 집값이 뛰면 정부가 신도시 개발을 발표하고 해당 지역에서는 투기 광풍이 불기 일쑤였다. 15년 전 노무현정부의 2기 신도시, 30년 전 노태우정부의 1기 신도시 때도 그랬다. 문 대통령이 비리·투기로 점철된 신도시 잔혹사를 까맣게 몰랐다는 고백이다. 그게 아니라면 적폐를 과거 정부 탓으로 돌리려는 노림수일 수도 있다. 전자라면 무능의 극치요 후자라면 남 탓만 하는 고질병이 도진 것이리라.

LH 사태는 현 정부가 만들고 키워 왔음이 틀림없다. 2018년 9월 3기 신도시 지정이 처음 예고됐던 때였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신도시 발표 전까지 250여명이 알고 있었던 사안인데 보안이 잘 지켜졌다. 너무 신기하고 짜릿했다”고 했다. 나 홀로 착각이었다. 공직사회에서는 정부가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몰아 대출 규제, 세제 강화 등 온갖 규제를 쏟아내자 이제 토지에서 대박이 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김 전 장관이 20여 차례 내놓았던 헛발질 대책이 집값을 부추기며 땅 투기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것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그 사이 LH 임직원, 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경기 시흥, 광명,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남양주 왕숙 등 3기 신도시 인근으로 몰려가 노른자위 땅을 몰래 사들였다. 이들은 아파트 분양권이나 단독주택 택지 등을 받는 ‘1000㎡ 이상’ 조건에 맞춰 땅을 쪼갰다. 이도 모자라 추가 보상을 노리고 왕버들 등 희귀한 묘목까지 빽빽이 심었다. 현재 경찰이 수사·내사 중인 투기 건수와 혐의자는 37건, 198명이며 갈수록 불어날 것이다. LH 사태는 국회·청와대 등 공직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과 지방의원 7명이 땅 투기 의혹에 휩싸였고 대통령 가족과 친인척까지 불똥이 튀었다. 땅 투기 악취가 이처럼 진동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진보 성향의 참여연대조차 이 정부에 투기가 완전히 판친다는 ‘투기 완판’ 낙인을 찍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LH 임직원의 토지거래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집중됐는데 상당 부분 변 장관의 LH 사장 재임 시절과 겹친다. 정부 1차 조사 결과 투기혐의자인 LH 직원 20명 중 절반 이상은 변 장관이 사장이던 시절 토지거래를 했다. 지난해 7월 혐의자, 내부정보 이용과 차명 투기 등 구체적 사실을 담은 제보가 LH에 접수됐지만 묵살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때 잦은 막말과 부적절한 지인 채용, 수의계약 탓에 자격 논란까지 겪더니 취임한 지 2개월여 만에 사의를 표명하고 ‘시한부 장관’으로 전락했다. 정가에서는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변 장관을 부동산 적폐 3인방으로 꼽는 얘기도 나돈다.

사후 대응도 엉망진창이다. 문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빌미 삼아 검찰을 배제하고 정부 조사와 경찰 수사를 병행하라고 지시해 혼선을 야기했다. 정부 조사는 겉핥기 쇼에 그쳤고 뒷북 압수수색은 증거인멸 시간만 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검찰 합동수사본부는 1990년 1기 신도시 때 1만3000명을 적발해 이 중 공무원 187명을 구속했다. 2005년 2기 신도시 때도 적발자와 구속 공무원 수가 각각 1만5558명, 455명에 달했다. 그런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의혹이 불거진 지 2주일이 흘렀지만 투기세력의 실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우왕좌왕하다 결국 특별검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 당시 금과옥조였던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망국적 투기로 집값과 땅값이 치솟으면서 국민 가슴에는 시뻘건 피멍이 들고 있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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