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2차 가해 오죽하면 회견 나서겠나

2021. 3. 1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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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17일 직접 기자회견장에 섰다. 그동안 변호인단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입장을 밝혀오다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나선 것이다. 그는 이날 “피해 사실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은 이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2차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용서하고 싶다고도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3주 전이라는 민감한 시점에 특정 정당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런데도 피해자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차 가해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자신이 공개되는 고통을 감수하며 직접 나섰을지 가해자들은 헤아려야 한다.

피해자 A씨는 이날 자신에 대한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며 박 전 시장의 위력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인데, 용서를 위해선 지은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게 먼저”라며 “그러나 고인의 방어권 포기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내 몫이 됐다”고 토로했다. 고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때론 가해·피해자가 뒤바뀌기까지 하는 현실에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사과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가 분명치 않고,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피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 했으며, 선거 캠프에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인해 치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정작 ‘위력 성폭력’ 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피해자는 본질과 상관없이 배후를 의심받으며 2차 피해에 시달려왔다. 피소사실 유출 과정에 관여한 남인순 의원 등이 여당 후보 캠프의 주요보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도 피해자에겐 또 다른 위력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용서에 앞서 제대로 된 사과와 당 차원의 징계를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야당 또한 이 사건을 정쟁에 이용해 그 의미를 퇴색시켜선 안 된다. 피해자의 일상으로의 안전한 복귀와 성폭력의 재발 방지가 이번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위력 성폭력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정치권과 우리 사회 전체가 단호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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