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정부마저도 '똥쟁이'가 되시렵니까? / 육길수

한겨레 2021. 3. 17. 16:4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똥'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사람이나 동물이 소화 뒤 배출한 찌꺼기를 뜻한다.

그래서 '똥을 떼였다'는 말은 노임 일부를 갈취당했다는 뜻이며 '똥쟁이'는 노임을 갈취한 자, 혹은 알고도 이를 묵인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동안 '똥쟁이'들이 빼돌린 돈만큼 발주자가 건설노동자들에게 다시 돌아가게 해주어야 하니 당연히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는 건설노동자들이 계속 '똥을 떼이길' 원하는가 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육길수ㅣ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똥’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사람이나 동물이 소화 뒤 배출한 찌꺼기를 뜻한다. 만약 상쾌한 기분으로 커피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며 이 글을 보는 독자가 계신다면 ‘분변’이나 ‘배설물’ 같은 완곡한 단어로 대체하지 못함을 사죄드린다. 그 이유는 이 ‘똥’이라는 말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똥’은 건설업계 은어다.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중간에 빼돌려진 돈, 다시 말해 착취로 못 받은 노임을 바로 ‘똥’이라 부른다. 그래서 ‘똥을 떼였다’는 말은 노임 일부를 갈취당했다는 뜻이며 ‘똥쟁이’는 노임을 갈취한 자, 혹은 알고도 이를 묵인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건설현장에서는 이런 ‘똥떼기’가 공공연한 관행이 되어 있다. 지금도 건설노동자들은 열악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고된 육체노동의 대가로 얻은 노임의 상당액을 팀장, 반장이나 ‘시다오께’(불법하도급업자), 인력소개소에 착취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똥’을 바치지 않으면 ‘똥쟁이’들이 일을 주지도 않고 현장에서 바로 쫓아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똥떼기’가 그러잖아도 빈곤한 건설노동자들의 소득을 더욱 줄여 생계를 어렵게 하고, 청년이나 숙련공들이 건설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청년과 숙련공들이 떠난 건설현장은 외국인노동자와 브로커만 남고 결국 시공 품질이 크게 떨어져 건설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생산자인 기업과 소비자인 국민들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를 막고자 정부가 나섰다. 올해 1월 일자리위원회에서 정부부처 합동으로 ‘건설공사 적정임금제 도입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적정임금제란 건설노동자의 임금이 하도급을 거치면서 삭감되지 않도록 발주자가 정한 금액 이상으로 임금을 보장해 중간착취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제도다. 2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송옥주 의원이 건설근로자법에서, 김교흥 의원이 건설산업기본법에서 각각 적정임금제를 입법화하면서 적정임금제는 순조롭게 가시화되는 듯했다.

건설노동자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내 돈을 빼앗아 가던 도둑들을 막아준다니 이보다 기쁜 소식이 또 있으랴. 하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돌연 제도 도입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3월26일에 있을 일자리위원회의 안건에서도 적정임금제가 제외되었다. 이유인즉슨, 공공발주 예산이 늘어나고 타 산업 종사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기획재정부가 이를 반대했다는 것이다.

기재부의 말은 맞다. 예산이 늘어난다. 그동안 ‘똥쟁이’들이 빼돌린 돈만큼 발주자가 건설노동자들에게 다시 돌아가게 해주어야 하니 당연히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제도는 건설노동자만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것도 맞다. 모든 산업 중 임금 착취가 일상적, 관행적으로 만연해 있는 산업은 건설업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건설노동자들이 계속 ‘똥을 떼이길’ 원하는가 보다.

원래 적폐와 불법을 혁파하기 위해선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법이다. 게다가 적정임금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자 2017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의결한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이제 와서 적정임금제 도입을 주저하는 정부에 묻고 싶다. 그러한 수고로움이 두려워 수십년간 임금 착취에 신음해온 건설노동자들을 외면할 것인지 말이다.

또 한마디 더. “이제야말로 건설현장의 ‘똥’을 없앨 때입니다. 정부마저도 ‘똥쟁이’가 되시렵니까?”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