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으로 시작해 '차상현'으로 끝났다

이정국 2021. 3. 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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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결산]
16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프로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1위 시상식이 끝난 뒤 GS칼텍스 선수들이 차상현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김연경으로 시작해 차상현으로 끝났다.’

16일 지에스(GS)칼텍스의 우승으로 정규리그가 막을 내린 2020~2021 도드람 브이(V)리그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리그 초반은 김연경을 앞세운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독무대였지만, 리그 후반에는 각종 악재가 속출하는 틈을 타서 차상현 감독의 지에스(GS)칼텍스가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지난 6개월 동안의 브이리그 대장정을 열쇳말로 요약했다.

■ ‘김연경’

지난해 6월 흥국생명은 김연경(33) 입단을 공식 발표했다. 2009년 일본 진출 뒤 11년 만의 국내 복귀였다. 샐러리캡으로 인해 후배들의 연봉이 깎일 것을 우려한 그는 연봉 3억5천만원이라는 ‘헐값’에 입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10월 브이리그가 개막 뒤 여자배구는 김연경 천하였다. ‘김연경 효과’로 인해 여자 배구는 시청률이 최고 2%를 넘어서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김연경은 올스타 투표에서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최고의 스타임을 입증했다.

리그 막판 학교폭력 문제 등이 불거져 팀이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도 김연경은 팀의 리더로서 후배들을 다독이며 팀을 이끌었다. 비록 시즌 막판 지에스에 역전을 허용해 2위로 미끄러졌지만, 리그 초반 개막 10연승(정규 14연승 타이) 신기록을 세우며 흥국생명을 여자 프로배구 역사상 가장 강한 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정규리그를 공격 1위(성공률 45.92%), 서브 1위(세트다 0.28개), 오픈공격 1위(성공률 44.48%)로 마무리했다. ‘흥국생명엔 외국인선수가 두 명’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리그 후반 마음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한국 배구사에 ‘김연경’ 세 글자는 영원히 각인됐다.

흥국생명의 김연경. 연합뉴스

■ ‘3위’

흥국과 지에스의 1·2위 싸움과 더불어 3위 IBK기업은행 알토스와 4위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봄배구 막차 티켓 경쟁도 치열했다. 자고 나면 순위가 바뀐다고 할 정도로 시즌 막판 살얼음이 이어졌다. 결국 승점 1점 차이로 기업은행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기업은행의 최종 전적은 14승16패(승점 42점)였고 도로공사는 13승17패(승점 41점)였다. 도로공사는 지난 6일 흥국생명전에서 패한 것이 뼈아팠다.

하지만 도로공사의 뒷심은 대단했다. 시즌 초 6연패를 기록하며 리그 꼴찌에서 중간 순위 3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줬다. 주전 공격수 박정아가 리그 내내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서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보였지만, 베테랑 리베로 임명옥의 눈부신 활약은 도로공사 급부상의 원천이었다. 임명옥은 리시브 1위(효율 52.63%), 디그 1위(세트당 5.69)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 수비수임을 입증했다. ‘수비의 신’, ‘임리베’, ‘임수비’ 등 별명을 가진 임명옥의 활약은 공격 분야의 김연경과 함께 국내 원톱이었다. 임명옥은 리그 종료 뒤 〈한겨레〉에 “개인적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다음 시즌엔 더욱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전해왔다.

한국도로공사의 임명옥. 한국배구연맹 제공

■ 차상현과 아이들

지난해 12월 〈한겨레〉와 인터뷰한 지에스의 레프트 강소휘는 “리그 1위는 힘들 거 같다”고 했다. 당시 승점이 11점 차였고 흥국생명의 독주 체제가 워낙 거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에스의 선수들은 건강한 에너지를 앞세워 슬금슬금 흥국생명을 추격했다. 개성 넘치는 선수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차상현 감독이었다.

차 감독은 늘 밝고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라고 선수들에게 주문한다. 선수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권위를 내려놓은 소탈한 리더십에 선수들은 더욱 하나로 뭉쳤다. 차 감독 스스로 “때로는 옆집 아저씨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때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스스럼없이 선수들과 소통한다.

특히 백업 선수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백업 선수가 서브 에이스에 성공하면 경기 뒤 직접 불러 용돈을 쥐여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선수들이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플레이를 할 때는 불호령을 내린다. ‘허허실실 리더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016년 처음 지휘봉을 잡고 리그 5위에서 시작해 5년 만에 팀을 정상에 올려놓은 차상현 감독은 이번 리그를 통해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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