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방검복 입은 증시 전문가

홍준기 기자 2021. 3. 1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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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증시 전문가를 만났다. 그는 공매도에 대해 언론에 자주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상의 위에 검은색 조끼 하나를 더 입고 있었다. 조끼의 정체는 칼에 찔려 다치는 것을 막아주는 방검복이었다. 그는 “과거에도 내게 번갈아가며 전화를 걸어 욕설하는 ‘테러’를 당해본 적도 있는데, 최근에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이 너무나 살벌해 하나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한국주식투자연합회의 공매도 폐지, 금융위원회 해체 주장을 부착한 버스가 달리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그래도 그는 용감했다. 공매도 제도가 증시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했다. 공매도 제도가 없으면 인위적으로 주가를 올려 차익을 챙기는 소위 ‘작전 세력’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연구자로서의 ‘양심’에 따라 일관된 주장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반면 정부는 비겁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일 오후 “전반적으로 글로벌 증시가 안정되면서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던 국가들이 금지 조치를 종료한 상황”이라고 하고선, 공매도 재개 시점을 3월 16일에서 5월 3일로 연기해버렸다. 홍콩식 공매도 종목 지정제도를 도입할 것인데 이를 준비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홍콩식 공매도 종목 지정제도는 그간 금융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한다”며 반대했던 제도다. 왜 금융위가 기존 입장을 바꿔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로 공매도 재개 시점을 미루기 위한 ‘핑곗거리’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 시점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한국거래소 등 증시 관계 기관은 합동으로 “공매도가 주가 하락과는 상관관계가 입증된 바 없으며, 순기능도 있는 제도”라는 자료를 냈다. 이 기관들이 금융위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이러한 자료를 발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체 왜 금융위가 직접 이러한 설명을 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2~3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기 하강 우려 등으로 국내 증시뿐 아니라 해외 주요 증시도 주가 폭락을 경험했다. 하지만 영국 등 해외 증시 선진국의 금융 당국은 “공매도가 최근의 주가 하락을 야기한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공매도 금지 조치를 하지 않았다. 공매도를 일시적으로 금지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대만 등도 2~3개월 만에 다시 공매도를 허용했다. 해외에도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초래한다고 반대하는 투자자들은 있지만, 해외 금융 당국은 이들의 눈치를 보며 의사 결정을 미루지는 않았던 것이다.

‘공매도는 증시에 꼭 필요한 정상적 매매 기법’이라고 생각은 하면서 투자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금융 당국의 태도는 비겁하다. 우리나라 금융 제도를 좌지우지하는 정부 부처가 단 한 명의 전문가보다 용기가 없다는 것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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