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배터리' 발칵 뒤집은 폭스바겐, 더 큰 문제 있다

김성은 기자 2021. 3. 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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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사진=폭스바겐 홈페이지


폭스바겐이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주력으로 생산해온 파우치형 배터리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중국 CATL, 스웨덴 노스볼트가 주력 생산하는 각형 비중을 높인다는 전략을 공식화하자 국내 업체들에 단기 충격이 불가피하단 지적들이 나온다.

특히 폭스바겐이 배터리 관련 궁극의 목표는 '전고체 배터리'라고 밝힌 것은 차세대 배터리 주도권을 넘보는 의지로까지 해석돼 '유럽굴기' 야심을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조 쏟아부어 유럽 내 배터리 공장 총 6곳 짓겠다는 폭스바겐
지난 15일(현지시간) 폭스바겐은 '파워데이'에서 2023년부터 '통합형셀(Unified Cell)'이라 부르는 각형 배터리를 도입, 2030년까지 이 비중을 전체 적용분의 80%까지 늘린다고 밝혔다. 나머지 20%는 원통형, 파우치형 등을 자동차 사양과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겠다는 전략이다.

목적은 하나다. 배터리 제조에 드는 비용을 50%까지 낮춰 전기차 전체 비용을 낮추고 이를 통해 전기차 확산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앞서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중 폭스바겐 비중을 70%까지 늘릴 계획도 내놨다.

이를 위해 이 기간 총 240GWh 상당량의 배터리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현재 스웨덴, 독일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 외에도 유럽 내 4개 공장을 더 지어 총 6개 공장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이 경우 290억달러(32조8000억원)가 들 것으로 봤다.

이같은 계획과 더불어 이날 눈에 띈 점은 합작사인 스웨덴 배터리 회사 노스볼트와의 파트너십을 강조한 점이다. 노스볼트는 폭스바겐이 이날 수 차례 언급한 유일한 배터리 업체다. 폭스바겐은 노스볼트에 이미 140억달러 어치 신규 수주도 줬다. 노스볼트로 확실한 몰아주기를 한 셈이다. 이는 양산경험이 부족한 노스볼트가 성장하는데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폭스바겐은 발표에서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중국 기업과 협력 상황을 공유하는데도 상당시간 할애했다. 현지에서 'CAMS'라 불리는 합작사를 통해 2025년까지 총 1만7000개에 달하는 고속충전 시설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개화기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충전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하기 위함이다.

중국 CATL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CATL이 각형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는만큼 노스볼트 뿐 아니라 중국 CATL도 폭스바겐의 신전략 수혜를 입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LG·SK, 올해 폭스바겐 MEB 물량 입찰 어려울 수 있어…파우치형 쓰는 고객 확보 주력해야"

폭스바겐의 이 전략에 따라 파우치형 배터리에 주력해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단기충격이 불가피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원통형과 파우치형을 함께 생산하지만 파우치형 생산량이 훨씬 높다. SK이노베이션은 전량 파우치형을 생산한다. 반면 삼성SDI는 원통형, 각형을 생산한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3개 업체들은 2018년 폭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 프로젝트(MEB)와관련해 대규모 수주를 받았었다"며 "2024~2025년 양산 목표로 올해 하반기 입찰 예정인 MEB 후속 물량에 대해서는 국내 업체들 수주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파우치형에 맞춰 이미 대규모 시설투자를 진행한 일부 배터리 기업들로서 또 다시 큰 돈을 들여 각형에 맞춘 시설을 준비하고 짓는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파우치형을 쓰는 다른 고객사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 밖에는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친 비관론은 자제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급형 전기차 영역에서는 업체간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접근이 (전체 시장을 키우는 데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며 "전기차용 배터리는 각형 뿐 아니라 파우치, 원통형이 고유한 장단점을 지닌 만큼 향후 세 타입은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서운 것은 폭스바겐이 '궁극의 목적은 전고체 배터리'라고 규정하고 이 역시 자체 또는 합작 생산할 수 있단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전기차 개화기 초기 리튬이온 배터리 단계에서는 한중일 3국에 주도권을 내줬더라도 차세대 배터리 선도 지위는 유럽이 가져가겠단 장기적 계획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고체여서 현재 많이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안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삼성SDI, 파나소닉 등 유수 업체들이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폭스바겐은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중인 미국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의 주요 투자자다.

차세대 배터리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 지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전이 더 안타깝다는 반응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소송 초기 가장 우려했던 것이 한국 기업끼리 싸우는 사이 중국에, 또는 유럽에 배터리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며 "1년 여 전 우려했던 영향이 지금에 와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진정성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한다면 합의의 문은 열려 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ITC 판결은 LG에너지솔루션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고 추후 다른 업체들과 기술 경쟁시 오히려 기술 보호 장벽을 높이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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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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