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14년 CJ-OGN '원팀맨' 권수현, 그가 말하는 감독의 목표

박상진 2021. 3. 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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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에서 커리어를 마치는 선수를 '원팀맨'이라고 부른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무대에서는 흔하지 않고, '페이커' 이상혁 같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위치에 있는 선수가 있는 정도다. 그야말로 팀과 동고동락을 같이 한 사이다.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와 감독까지 한 팀에서 마쳤다면, 그야말로 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CJ 엔투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OGN 엔투스 총감독까지 지낸 권수현 감독의 이야기다. 2006년 CJ 엔투스에서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시작해 커리어 중간 공군 에이스 생활을 했지만, 이후 다시 CJ로 복귀해 작년 OGN 엔투스 해단까지 쭉 한 팀에서 계속 활동했다.

14년의 세월 동안 한 게임단에서 활동한 권수현 감독은 그동안 갖지 못했던 휴식기를 가지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더 나은 감독이 되기 위한 시간을 갖고 있었다. 한 팀에서 선수에서 감독까지,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커리어를 가진 권수현 감독은 자신이 걸어왔던 시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작년 말 OGN이 폐국하면서 OGN 엔투스도 함께 해단했습니다. 그리고 석 달 정도가 흘렀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셨나요
사실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다 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어떻게 보내야 할지 좀 막막하기는 했죠. 그래도 이런 시간이 흔하지 않을 듯해서 당장은 마음 놓고 휴식 중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여기서 멈출 순 없잖아요.

14년은 e스포츠에서 정말 긴 시간인데, 그 시간을 간략히 정리해볼까요
2006년에 CJ 엔투스에 입단하면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등록이 되었고, 선수로 활동하다 2011년 공군 에이스에 입단했죠.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CJ 엔투스에 코치로 복귀해서 이후에 감독과 총감독까지 지냈습니다. CJ 엔투스에만 있던 시간은 12년이고, 공군 에이스에서 군 복무를 했죠.

CJ, 그리고 OGN에서 청춘을 바치신 거네요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스타크래프트 시절만 하더라도 거의 한 팀에서 커리어를 마쳤어요. 저도 그런 선수 중 한 명이었고요. 아무래도 제가 데뷔한 팀이라 애정이 깊어서 어떻게든 끝까지 같이 하고 싶었어요. 저에게 많은 걸 해준 팀이거든요. 그래서 해단 소식을 들을 때 정말 슬펐죠. 마침 OGN 엔투스 펍지 팀이 글로벌 대회 진출 확정인 상황이었는데, 팀 이름을 세계적으로 일릴 상황에 팀이 해단했죠. 끝마무리가 정말 아쉬웠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데뷔해서 스타크래프트2 코치와 감독을 지냈고, 이후 펍지와 클래시 로얄까지 맡아 총감독까지 지냈는데 여러 종목을 계속 바꿔 맡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종목을 맡아야 한다는 게 자신이 없었어요. 새 종목을 한다는 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그래서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긴 한데, 오버워치도 준비했었습니다. OGN에서 오버워치 팀을 창단하려 했는데 중간에 무산됐고, 바로 펍지팀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RTS에서 FPS로 아예 장르가 처음 바뀌었을 때는 좀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 적응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한 팀을 만들고, 이어 한 팀을 더 만들었습니다. 클래시 로얄 팀을 만들어야 할 때는 노하우가 쌓여서 힘들지 않게 진행했죠. 게임은 공부하면 되는 거고, 좋은 팀을 만드는 전체적인 흐름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떤 종목을 해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제기 모르는 세부적인 부분은 코치-프런트와 협업하면 되었고요.
CJ 엔투스에서 선수로 시작했는데, 선수로는 크게 이름을 못 날렸습니다. 그리고 공군 에이스로 입대한 후 돌아와 스타크래프트2 코치를 시작했죠. 이 시기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선수 시절부터 코치를 하고 싶었어요. 상대의 멘탈적인 부분, 그리고 전략 전술에 대한 분석은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무대 울렁증이 있는지 경기에서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어요.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공군에 다녀오니 팀에서 먼저 연락을 줬어요. 코치로 같이해보면 어떻겠냐고. 그렇게 코치 생활을 시작했죠. 그때가 선수들이 종목 전환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대부분 힘들어했죠. 게다가 리그 오브 레전드가 한창 인기를 끌면서 진로 자체를 고민하던 선수도 많았으니까요. 마음이 떠난 선수는 잡을 수 없지만, 남기로 선택한 선수들에게는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일단 제가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서 남은 선수들에게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남아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하기로 한 선수들에게는 길잡이가 되어야 했고, 저 자신도 열심히 해야 했던 시기라 열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죠.
 

코치 시절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방향성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았죠. 다른 스포츠 감독의 책이나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최소한 선수만큼 경기를 보는 흐름이나 게임 내부의 디테일한 부분을 챙기려고 했죠. 경기 전략을 짜주는 것도 한 두번이고, 계속해줄 수는 없었거든요. 그리고 선수들이 게임에 집중하면서 놓치는 부분들, 단기적인 경기에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지만 선수 생활 장기적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같은 것과 함께 슬럼프에 빠지면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죠. 매 경기 승리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만 이건 힘든 일이고, 선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스타크래프트2 시절부터 코칭스태프 일을 시작했죠. 2016년 프로리그 종료까지 함께 했는데 종목의 끝을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듯 합니다
공군 에이스 시절 기회가 닿아서 스타크래프트2에 대해 많이 공부한 게 도움이 됐어요. 연습도 많이 해서 그랜드마스터 티어도 유지했죠. 부대 안에서도 다른 선수들의 게임을 보고 분석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공군 에이스가 각 팀에서 잘하는 선수만 모아놓은 곳이라 다양한 선수들의 전략을 접할 수 있어 도움이 됐죠. 그 덕분에 전역 후 바로 CJ에 합류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코치 생활을 하다 2016년 감독을 맡았는데 한 해하고 프로리그가 막을 내리면서 스타크래프트2 게임단이 해체됐죠. 뭔가 제대로 해보려 했는데 바로 끝나버린 상황이었고, 다행히 당시 사무국장님이 다른 종목을 창단할 거니 기다려 보라고 해서 펍지 팀을 맡게 되었습니다. 힘든 과정이긴 했는데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죠.

이야기 하신대로 코치에서 감독까지 맡으셨는데, 같은 코칭스태프라도 다른 일을 맡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던가요
코치때는 눈 앞의 성과에 급급했어요. 큰 그림을 보지 못했죠. 하지만 감독이 되어서는 당장의 승리보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 되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재능있는 선수를 선발하고, 그 선수들이 나쁜 습관을 만들지 않도록 하면서 너무 플레이에 집중해 큰 흐름에서 놓치는 것이 없도록 도와줬죠.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팀 모두가 성장해서 좋은 팀을 만드는 게 감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활동하고 스타크래프트2 코치와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종목을 바꿔 펍지를 해도 본질적인 감독의 목표는 바뀌지 않더라고요.
 

펍지에서도 OGN 엔투스는 계속 좋은 성적을 냈죠. 우승하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해도 항상 중상위권 이상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런 성적을 낼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OGN 엔투스 펍지 팀은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팀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장에는 흔들려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 다시 성적이 올라왔죠.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어떻게 해야 여기서 1점이라도 더 얻을 것인가 항상 고민했어요. 펍지 경기를 하면서 자기장이 한 두번 안 따라줄 수는 있는데 계속 따라주지 않으면 멘탈이 흔들리거든요. 좋지 않은 자기장을 탓할 게 아니라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가 하는 걸 계속 이야기해요. 우리가 최선의 길을 가고, 상대가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하면 그 기회를 우리가 이용할 수 있거든요. 라운드마다 1점, 2점씩 더 얻다 보면 이게 페이즈가 끝날 때 즈음이면 엄청난 차이가 되고 이 차이가 OGN 엔투스를 강팀으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14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이제는 잠시 휴식기를 가지면서 다음 행보를 준비 중입니다. 그간 챙기지 못했던 일도, 생각하지 못했던 고민도 있었을 텐데
그동안을 돌아보면서 제가 무엇을 제일 잘했는 지를 생각해보고, 제일 잘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저 스스로 제 장점은 선수단 운영이라고 생각하고요. 단순이 한 번 불타오르고 말 팀이 아니라 꾸준히 잘하는 팀. 그래서 팀들이 믿고 응원할 수 있고, 선수들도 믿고 커리어를 맡길 수 있는 팀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다양한 종목에서 꾸준히 활동했으니까, 어떤 종목이라도 감독이 해야 하는 본연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 많은 종목에서 다양한 선수들과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잘 알지만, 혼자서 고민하면 풀리지 않죠. 오히려 다른 시각을 가지고 멀리서 보는 사람의 조언도 필요하고요. 의견 교환을 하다 보면 언제나 답이 나오고, 보통 완벽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좋은 결과로 이어졌죠. 게임에 대해서는 공부하면 되지만 어떤 감독이 좋은 감독인가, 그리고 팀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노하우는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다음에 어떤 종목을 하더라도 제가 자신 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휴식기 이후 다시 활동이 기대되는 대답이네요. 그럼 인터뷰를 마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CJ 엔투스에서 시작해 OGN 엔투스까지, 14년까지 한 팀에서 쉴새없이 달려왔습니다. 한창 감독일을 할 때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그 기회가 되어 휴식과 함께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간 부족했던 부분을 고민해보고, 더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종목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처럼 팬들이 마음껏 응원할 수 있는 팀, 선수들이 믿고 커리어를 맏길 수 있는 팀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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