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LH로남불

배연국 2021. 3. 1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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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조선 최고의 풍자가였다.

작금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파동은 번지르르한 껍질만 중시하는 세태의 결과물이다.

LH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LH를 빗댄 직업등급표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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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조선 최고의 풍자가였다. 연암이 쓴 ‘예덕선생전’에는 똥지게꾼 엄행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동네에서 똥을 푸는 그는 선비 선귤자와 가깝게 지냈다. 예덕선생은 선귤자가 엄행수를 부르는 호칭이다. 보다 못한 선귤자의 제자가 “어떻게 똥 푸는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느냐”고 항변하자 스승이 대답했다. “그가 하는 일은 비록 불결하지만 먹고사는 방법은 향기롭고, 몸이 처한 곳은 더러우나 의리를 지킴은 지극히 높으니 감히 벗으로 삼지 못하고 스승으로 받드는 것이네.” 사람은 신분이나 직업이 아니라 그의 행실로 판단해야 한다는 일침이었다.

책 속의 선귤자는 연암의 친구인 이덕무의 별호다. ‘선귤(蟬橘)’은 매미와 귤을 가리킨다. 서울 남산에 살았던 이덕무는 살림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집이 너무 작아 매미 허물이나 귤껍질과 같다는 뜻에서 선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덕무는 이런 질문으로 선귤의 의미를 밝힌다. “매미가 벗은 허물이 말라붙고 귤이 시들어 껍질만 남았는데 어디에 소리와 향과 맛이 있겠소?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외물에서 나를 찾을 수 있겠소?”

작금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파동은 번지르르한 껍질만 중시하는 세태의 결과물이다. LH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LH’와 한글 ‘내’의 표기가 유사한 점에 착안한 풍자와 패러디도 쏟아진다. 집권층 부조리를 꼬집던 내로남불은 ‘LH로남불’ 신조어로 탈바꿈했다. ‘LH가 하면 노후 준비, 남이 하면 불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경유착을 다룬 영화 ‘내부자들’은 ‘LH부자들’로 바뀌었고, ‘다 내꺼야’라는 아동도서 제목은 ‘다 LH꺼야’로 둔갑했다. LH를 빗댄 직업등급표도 등장했다. LH 직원은 판사와 나란히 1등급에 올랐고, 2등급은 ‘형제가 LH 직원인 사람’, 3등급은 ‘부모가 LH 직원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땅 투기의 허물을 LH 탓으로만 돌릴 일도 아니다. 그들 역시 집권층의 투기 신공을 흉내 냈을 뿐이다. 대통령 처남은 LH로부터 토지보상금 58억원을 받았고, 여당 의원들은 노른자위 개발지만 골라 투기한다. 그들의 구린내가 예덕선생의 똥장군보다 고약하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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