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잡음을 주인공으로 화폭에 담다

전지현 2021. 3. 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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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개인전 '순항'
버려진 점과 선, 시스템오류..
불필요한 '노이즈'를 화두로
본질과 불순물 경계 허물고
거짓과 진실 뒤집어 구현
美아모리쇼·아트바젤홍콩 등
호평 받아 인기작가 반열에
박종규 작가(55)는 서구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미니멀리즘은 최소한의 점과 선만 남기고 나머지는 제거한다. 그런데 작가는 자꾸 버려진 것에 미술적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남들이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선, 잡음, 시스템 오류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신호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른바 '노이즈(noise)'가 그의 작품 화두가 됐다.

노이즈를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유년시절 봤던 거대한 폭포수를 떠올렸다. 충격적인 폭포 물줄기 소리가 주변 소리를 순식간에 덮어버렸는데, 둘 중 뭐가 잡음인지 헷갈렸다. 본질과 불순물을 탐구하는 과정을 영상 작품 'Embodiment(구현)'에 담았다. 검은 우주를 재현한 화면 속 무수한 하얀 점에서 거대한 물 폭탄이 쏟아졌다. 이어 폭포 소리를 기하학적 이미지로 다채롭게 변주했다. 작은 점의 행과 열로 이뤄진 화면의 가장 작은 단위 픽셀을 무한 확장했다. 흡사 바코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조은 개인전 '~Kreuzen(순항)'에서 만난 박 작가는 "다섯 살에 처음 폭포를 봤을 때 경이로움을 어떤 모습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우주를 떠올렸다"며 "화면은 노이즈이고 허구, 거짓이지만 작업 과정은 진실하다"고 말했다.

`~Kreuzen`(162.2㎝×130.3㎝) [사진 제공 = 갤러리조은]
"본질과 불순물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헷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실과 거짓이 뒤집히기도 해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진실이 거짓이 되거나, 거짓이 진실이 되는 순간을 겪어왔죠. 마찬가지로 미술에서 배제된 것이 중심이 될 수 있어요. 음악처럼 미술에서도 노이즈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고 싶어요."

진실과 거짓, 본질과 불순물을 뒤집는 여정이지만 여유롭게 작업하고 싶어 영상 작품 '구현' 화면을 캔버스와 물감으로 옮긴 평면 연작 제목을 '~Kreuzen(순항)'으로 정했다.

~kreuzen (162.2x130.3cm)
전시장에는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 등 단색조에 가까운 그림 28점이 펼쳐져 있다. 픽셀로 이뤄진 차가운 디지털 이미지이지만 물감을 직접 칠해 손맛이 느껴진다. 노이즈를 표현한 영상 화면을 시트지로 인쇄한 후 캔버스에 붙이고 선과 점을 떼내 아크릴 물감을 덧칠했다. 결국 작가가 만든 노이즈 이미지만 남고 나머지는 불순물로 제거됐다. 기존 작품은 흑백 위주였지만 코로나19 블루(우울)를 떨치기 위해 밝은색 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2~5겹 컬러 물감층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 까다로웠지만 색이 주는 기운으로 버텼다. 그는 "작업실 외에 별로 갈 데가 없어 명절에도 끊임없이 작업한다"며 "나는 하나지만 내 작업은 수십만 가지로 변화할 수 있어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을 회화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는 '21세기형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2017년 아트바젤홍콩에서 글로벌 미술 전문매체 '아트시'가 선정한 베스트 부스에 뽑혔으며, 2018년에는 미국 아모리쇼에 초청받아 쌍방향 미디어 작품을 선보였다.

비디오아트 선구자 백남준을 존경했던 작가는 1992년 파리국립미술학교 유학 시절에 2시간 동안 작품집을 들고 퐁피두센터에서 무작정 기다려 그를 만났다. 당시 백남준이 그의 작품집을 보고 커피를 사주면서 "내가 커피를 사는 일은 드물다"며 "작가는 그림을 팔 줄 알아야 한다"는 묘한 말을 남겼다. 전시는 4월 9일까지.

~kreuzen(116.8x91cm)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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