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프로포폴' 이재용 수사심의위 소집이 던지는 몇 가지 질문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신청한 수사심의위원회 개최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월 공익 신고로 시작된 이 사건 수사의 지속 여부는 이제 외부인들로 구성된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에서 1차적인 판단을 받을 예정입니다. 지난 2018년 수사심의위 제도가 도입된 이후, '마약 혐의' 사건으로는 처음 열리는 수사심의위원회이기도 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6월 '삼성물산 불법합병' 혐의에 이어 두 번째로 수사심의위원회에서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불법합병' 혐의에 대한 불기소를 권고했을 때, 진보 단체나 시민사회에서는 많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 위원회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방패막이'로 활용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다양한 요구도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보완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 속, 1년도 지나지 않아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가 다시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동일 인물에 대해 열리는 수사심의위원회지만, 다루게 될 사건의 성격은 매우 다릅니다. 내용이 복잡하고 법리 적용에도 여러 의견이 나오는 '불법합병' 사건과는 달리, 이번에 수사심의위원회가 다루게 될 '프로포폴' 사건은 훨씬 단순한 성질의 것입니다. 세밀한 법리 적용 논쟁보다는, 사실관계 확정이 기소 여부와 유무죄 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런 성질의 사건 수사를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된 상황은 몇가지 답해야할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두산 4세 신청은 기각, 이재용은 부의(附議)…다른 유명인 마약 혐의는 어떻게 할 건가?
그런데 수사심의위원회 대상이 되는 사건의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왔습니다. 어디까지를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으로 볼 것이냐는 것입니다. 혐의 내용이나 사건 종류가 아닌, '국민적 의혹'이나 '사회적 이목'이라는 추상적 단어가 기준이 되다 보니 비슷한 혐의라도 누구는 수사심의위에서 이의 제기할 기회를 얻고, 누구는 못 얻게 되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합니다.
비근한 예가 있습니다. 지난해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가 불거졌던 두산 일가 4세 박진원 부회장의 경우입니다. 박 부회장은 당시 수사의 적정성을 따지겠다며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경우와는 달리, 검찰시민위원회는 박 부회장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은 기각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과 박진원 부회장 혐의의 세부 내용과 '국민적 관심도'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법절차의 잣대는 보다 명확해야 합니다. 앞으로 마약류 혐의가 불거진 유명 연예인이나 공인이 이재용 부회장 사례를 근거로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할 때, 지금의 기준으로 모두가 납득할 만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어떤 사람 사건은 수사심의위에서 이의제기 할 기회를 얻고, 어떤 사람 사건은 얻지 못한다면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상식에 물음표가 찍힐 수밖에 없습니다.
30쪽이내 서면 의견서만 보고 논의하는 부의심의위…논의 과정은 '깜깜'
논의 과정도 깜깜합니다. 검찰 예규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부의할지 결정하는 '부의심의위원회'는 검찰과 피의자 양측이 낸 30페이지 이내의 서면 의견서만 보고 내용을 심사합니다. 의견서를 바탕으로 한 검찰과 피의자 양 측의 추가 의견 개진 기회는 원칙적으로는 부여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 만약 의견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기재돼 있어도 위원들은 이를 바탕으로 수사심의위 부의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시민 통제'의 외형이 '책임 희석'의 실질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가장 큰 문제점은 검찰 내의 각종 위원회 운영이 '시민 통제'의 실질을 달성하기보다는, '책임 희석'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호한 기준으로 이뤄지는 위원회들의 폐쇄적 논의 과정 속에서 수사 기관의 기능 작용은 저해되고, 사건 처리의 책임성만 희석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는 복잡한 법리 검토를 요하는 사건보다, 사실관계의 확정이 중요한 원초적 사건들에서 더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앞으로 마약 혐의가 불거지는 유명인들이 능력 있는 변호인을 선임해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구하는 일들이 빈발할 경우, 수사기관은 수사기관대로 '수사 지연으로 결과를 낼 수 없었다'는 변명을, 피의자는 피의자대로 '법의 잣대가 공평하지 않았다'는 불평을 할 일이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가진 공적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치밀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경제력과 여론 주도 능력 등 다른 힘을 가진 이들이 공적 권력의 작동을 자기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위험성만 커질 수 있습니다. 당위는 좋아도, 일생에서 큰 범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선 때로는 없으니만 못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온갖 추문들과 함께 소비되다 수사심의위로 향하게 된 재벌 총수의 프로포폴 투약 혐의 사건 속에서 꼭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참고자료
-기소재량의 통제방안으로써 검찰시민위원회의 합리적인 운영방안, 박찬걸, 한양법학 28(3)
-검찰시민위원회 및 기소심사회 제도에 대한 비판적 고찰, 김태명, 형사정책연구 2010.12월호
-형사법 교수들 "검찰 수사심의위 개선 시급", 강한 기자, <법률신문> 2020년 7월 23일자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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