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공연계에 다양성의 씨… 대중문화 성장 일군 '학전' 30년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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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실험정신, 판을 바꾸다
매체 밖 가수들의 무대
‘아침이슬’ 만든 김민기, 대학로에 설립
김광석·동물원·들국화·안치환 등 공연
홍대 인디음악 공연장 활성화 단초 돼
한국 뮤지컬 새 장 열어
국내 첫 라이브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獨 원작 압도… 소극장 넘어 세계서 호평
‘의형제’ 등 다양한 음악극 실험 이어가
배우사관학교로 명성
흥행 실패 때 노개런티 업계 ‘악습’ 탈피
최소 수입 보장… 배우 존중 신뢰 쌓아
황정민·설경구·김윤석·조승우 등 거쳐가
◆미래를 위한 못자리
“학전(學田)이 한자로 ‘배울 학’에 ‘밭 전’자다. 학전 처음 열 때 내가 한 말이 있다. 여기는 조그만 곳이기 때문에 논바닥 농사가 아니다,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거라고.”(김민기(사진), 2015년 한겨레 인터뷰 중)
척박한 환경에서 학전을 30년 동안 일군 건 김민기 학전 대표이고 그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음악 평론가 강헌은 김민기를 두고 “모든 혁명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고 한 번도 영어의 몸이 되지 않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저항의 깃발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1970년대 노래 ‘아침이슬’과 음악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며 검열과 탄압의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던 김 대표는 한동안 농사를 짓다 1980년대 중반부터 다시 어린이를 위한 노래극을 만들며 공연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던 중 서울 대학로 한 지인 건물 지하 공간을 후배들에게 극장으로 주선해 주려다 계약이 불발되자 미안한 마음에 그가 직접 문 연 무대가 학전 소극장이다.
학전의 오늘과 미래는 어린이·청소년극에 집중하고 있다. 2004년 ‘우리는 친구다’를 시작으로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무적의 삼총사’, ‘진구는 게임 중’ 등 학전 어린이 무대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였다. 청소년을 위해선 ‘모스키토’와 ‘복서와 소년’ 등 학전 청소년 무대 시리즈를 따로 만들고 있다. 만들어 공연할 때마다 적자를 보면서도 김민기 학전 대표의 어린이·청소년극에 대한 열정은 집요함에 가깝다. 젊은 시절 탄광 마을에 살았던 경험, 마을 아이들의 일기를 바탕으로 이미 1987년 어린이 뮤지컬 ‘아빠 얼굴 예쁘네요’의 대본·작곡을 맡았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어린이극에 남다른 가치를 두고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어린이극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학교와 학원의 입시 위주 교육 외에 문화적 소스라고는 TV와 게임 미디어밖에 없습니다. 그것만 갖고 아이들의 정서적, 정신적 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종합적 이성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아이들은 너무 협소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지금 우리의 작업은 최소한의 것입니다. 제가 힘들다고 그것마저 포기할 순 없겠지요.”
‘우리는 친구다’부터 ‘무적의 삼총사’, ‘진구는 게임 중’에 이르기까지 어린이극 역시 학전 대표작인 ‘지하철 1호선’과 마찬가지로 독일 그립스 극단 폴커 루드비히 원작을 김 대표가 번안·연출한 게 특징이다. 특히 학전 아동극은 부모의 이혼 문제, 학교 폭력, 장애아에 대한 차별 문제, 게임 중독 등 현실을 가감 없이 설득력 있게 그린다.
2010년 어린이무대 레퍼토리에 추가된 ‘도도’는 학전의 새로운 시도다. 독일 원작 대신 작가 강정연의 장편동화 ‘건방진 도도군’을 원작으로 작가 배삼식과 김민기의 대본·가사에 고찬용 작곡, 홍세정 안무로 젊은 작업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됐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학전은 소극장 콘서트뿐만 아니라 번안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뮤지컬, 어린이극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해온 곳”이라면서 “특히 학전 어린이극의 특징은 어린이 관점에서 어린이들이 실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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