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근육의 힘만 이용한 '111일간의 항해일지'

김서정 2021. 3. 13. 13:0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폴란드 그림책 작가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있다.

이 이름을 더듬지 않고 발음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거의 한국 이름처럼 술술 나온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보다 더 발음하기 어려운 두 폴란드 작가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런 글과 짝을 맞춘 그림은 정교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바의 바다〉
아가타 로트-이그나치욱 글, 바르트워미에이 이그나치욱 그림
이지원 옮김, 산하 펴냄

우리에게 친숙한 폴란드 그림책 작가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있다. 이 이름을 더듬지 않고 발음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거의 한국 이름처럼 술술 나온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보다 더 발음하기 어려운 두 폴란드 작가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다. 성이 같은 걸 보니, 그리고 함께 작업한 책이 더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부부인 모양이다. 이들의 이름도 거의 한국 이름처럼 술술 나오게 될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될 것 같다.

제목과 표지 그림을 얼핏 보면서 이게 어떤 상징, 아니면 그저 농담 섞인 청사진이 아닐까 싶었다. 한 사람 겨우 들어앉아 노를 저어 나아가는 조그만 카약으로 대서양을 건너다니. 하지만 작은 칼끝으로 단단한 나무를 오랜 시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목판화처럼 보이는 그림, 특히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휘날리며 탄탄한 팔로 노를 젓는 남자의 결연한 표정은 “농담이 아냐. 상징도 아냐. 이건 사실이고 지극한 현실이야!”를 선언하는 것 같다. 과연, 그건 사실이었다. 화학공장 엔지니어로 일하던 알렉산데르 도바는 “대서양을 팔근육의 힘만 이용해서 노를 저어 건넌 단 한 명”, 그 모험가다. 그것도 매번 항로를 바꿔가며 세 차례나! 세 번째는 “춥고 폭풍우가 많이 치며 갑작스럽고 예상하기 힘든 차가운 바람으로 가득”해서 가장 고생스러웠다는 북극 항로였다.

인간은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가

111일간의 사투 끝에 2017년 9월3일 목적지에 닿은 엿새 뒤 도바는 일흔한 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한다. 그는 이제 노를 내려놓고 노후를 편히 쉬어야겠다고 다짐했을까? 아닐 것 같다. 철저한 계산과 준비와 훈련으로 일흔 중반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다른 항로를 찾아내 떠날 것 같다.

88쪽에 이르는 제법 무거운 책이지만 읽는 호흡은 가벼울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짤막하지만 필요한 정보는 모두 전달하는 스피디한 문장은 가끔 “카약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은하수처럼 빛나는 선이 그려졌다” 같은 서정이나 “도바의 엉덩이를 군침 흘리며 바라보는 위험한 물고기들” 같은 유머도 품고 있다. 그런 글과 짝을 맞춘 그림은 정교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항해에 필요한 물건들을 펼친 면에 한가득 채워 넣은 글과 그림은 물론, 그 흩뿌려진 깨알 같은 항목들을 옮겨낸 번역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기계공학적·생물학적 전문용어들을 찾아보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도 아닌 모험을 왜 찾아서 하며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따라 나오는 질문은 ‘그럼 사는 게 뭔데?’이다. 이런 모험가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 얼마나 무한한 능력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새삼 되새기게 된다. 내가 그런 인간 중 하나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놀라운 인간으로서 맥없이 주저앉아 있을 수 있는가. 나이며 환경 같은 조건과 상관없이 떨치고 일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게 정리해본다.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edito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