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것

김동인 기자 2021. 3. 13. 13:0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편집자는 생을 녹여 도서관으로 흘려보내는 사람들이다.

책상에 A4 용지를 쌓아 올린 채 그 속에서 활자와 생을 결합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은 편집자의 삶을 세 단위로 분절해 기록한다.

지성과 근면함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한 권의 책에 녹아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읽는 직업〉
이은혜 지음
마음산책 펴냄

편집자는 생을 녹여 도서관으로 흘려보내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수지타산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수반된다.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보석 같은 저자를 발굴하려고 거칠게 직조한 초고를 정성 들여 읽는다. 이것은 반듯한 책장 속 보기 좋게 꽂힌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상에 A4 용지를 쌓아 올린 채 그 속에서 활자와 생을 결합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16년 동안 인문·사회·예술·교양 서적을 기획하고 발간한 출판편집인이다. 편집자는 작가에게 든든한 조력자이자 냉철한 비평가여야 한다. 작가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독자를 대변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편집자의 삶을 세 단위로 분절해 기록한다. 저자-편집자-독자로 이어지는 책의 여정을 위해 편집자는 길을 내고 다리를 이어준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편집자 자신의 노동을 덤덤하게 풀어낸 두 번째 파트다. 알알이 수놓은 밀도 높은 노동의 기록이 그 어떤 장편 서사보다 큰 울림을 준다. 저자의 노동은 타인의 글 바탕에서 출발한다.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직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과하게 포장하지도, 굳이 비하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한 시선이다. 좋은 책은 결국 엉덩이가 만든다.

글 노동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빌려와야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애정 넘치는 찬사도 마음 따뜻해지는 대목이다.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꾸준히 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번역자, 밤잠을 쪼개 원고를 훑어보는 감수자,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는 팩트체커까지. 지성과 근면함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한 권의 책에 녹아 있다. 그러다 보면 수긍하게 되는 것 한 가지. 좋은 책의 가격은, 그 가치를 따져볼 때 여전히 싸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