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넘은 갈월동 '거지아파트',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박동해 기자 2021. 3.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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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낙후된 쪽방이지만 재개발 지구에 미포함
80년 넘은 노후주택 소유권 문제로 재건축 밀려
서울 용산구 갈월동 일명 '거지 아파트'라고 불리는 쪽방촌 건물의 모습. 2021.3.3/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서울 용산구 갈월동. 주변의 건물보다 유독 낡아 보이는 이 건물을 인근 주민들은 '거지아파트'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공장 창고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해방 이후 난민들이 하나둘 내벽을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2~4평 규모의 작은 방들이 밀집한 하나의 마을이 됐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 중간에도 호실이 있을 만큼 빽빽이 방들이 들어차 사람들로 북적대던 이 건물에는 한때 90세대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2021년 3월 현재 건물에 남아있는 사람은 20여명 남짓이다.

5분 거리에 있는 옆동네 동자동에서 최근 쪽방촌 재개발 논란이 불붙은 와중에도 이 '거지아파트' 주변은 고요했다. 이전에는 같은 '쪽방촌'으로 묶였지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월동은 개발지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20여년 전부터 노후 불량주택으로 선정된 이 아파트는 정비 논의가 계속됐지만 소유권 문제 등으로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고 여전히 붕괴 위험을 안고 서 있다.

"70, 80년대에는 여기가 방 한칸에 7~8식구씩 살았어. 그런데 여기 윗동네에 가면 과일나무들이 많았단 말이야. 먹을게 없으니 애들이 그걸 따먹고 다니니까 주변사람들이 '거지 같은 놈들이 남의 과일나무 작살낸다'고 했던 게 이어져서 지금도 거지아파트라고 부르는 것 같아."

'거지아파트'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 40여년간 이 아파트에 살았던 김향자씨(79, 가명)는 다른 주민들보다 자세한 설명을 내놨다. 그는 남편이 이른 나이에 병으로 사망한 뒤 어린 아들과 함께 강원도 횡성에서 상경했다. 김씨는 1년만 머무를 생각으로 이 쪽방촌으로 들어온 것이 벌써 40년이 넘었다며 마른 목소리로 웃었다.

김씨는 정부가 나서 동자동 쪽방촌 재개발에 나선다는 소식에 "서울 한복판의 땅을 그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더욱이 정부가 기존 쪽방촌 주민들을 내쫓는 것이 아니고 다시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쪽방촌 또한 그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다른 쪽방촌과 마찬가지로 방마다 세면 시설이나 화장실이 없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은 재래식 변기만 달랑 놓여 있다. 가스 난방이 안 돼 전기로 난방을 해야 하는데 전기료 걱정에 전기 장판도 쉽게 틀기 어려웠다.

'거지아파트'라고 불리는 갈월동 쪽방의 공용 화장실. 2021.3.3/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구청에서 지속적으로 보수, 수리 작업을 해왔지만 건물 벽 여기저기에는 금이 갔고 계단 일부는 형태를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사람이 떠나간 한 빈방에는 천장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낡아 색이 바랜 가운데 '붕괴 위험으로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됨'을 알리는 노란 표지판이 건물 외벽에 '새것'의 모습으로 붙어 있었다.

김씨는 40여년 전 쪽방을 사서 들어온 '방주인'이라 세를 살고 있는 다른 주민들 보다야 형편이 나았지만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만한 형편이 되지 못해 계속 살아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7~8평 정도 안에 샤워실하고 화장실만 있으면 좋겠어. 더 바라면 욕심이고" 김씨의 소망은 소박했다.

건물이 너무 낙후했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차례 철거와 재건축 논의가 있어 왔지만 제대로 진행이 되지 못했다. 현재 이 아파트는 무허가상태로 부동산등기도 건축물대장도 등록돼 있지 않다. 무허가상태에서도 건물 내 쪽방들에 소유권 거래가 계속돼 80여개가 넘는 쪽방들을 수십명의 주인들이 나누어 소유하고 있는 구조다.

소유를 인정할 수 있는 자료도 분명치 않아 소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건물에 살지 않는 외지인들이 쪽방을 소유한 상태에서 재건축을 위한 동의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건물에 또다른 거주민인 이석민 할아버지는(80, 가명) "21년 전에 처음 입주하고부터 철거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직도 결정된 게 없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이에 쪽방촌 주민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에서는 그동안 '쪽방'으로 규정돼 관리되던 곳에 살았던 주민들이 새롭게 개발되는 공공주택단지에 동자동 주민들과 함께 입소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용산구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가난한 쪽방 주민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 이번 재개발의 핵심 목표였으니까 임대주택 공급량을 넓혀서 주변 쪽방 주민들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라며 주변에 제외된 쪽방의 규모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주민들도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이 변경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활동가는 동자동에 앞서 정부 주도의 공공개발이 진행된 영등포역 주변의 쪽방촌의 경우에도 개발지구에 포함되지 못한 사각지대들이 있었다면서 "이왕에 개발을 하는 김에 열악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쪽방촌 재개발에는 갈월동뿐만 아니라 인근의 양동 지역의 쪽방촌도 제외됐다. 양동의 경우 민간 주도의 재개발이 계획되면서 토지와 건물들의 외부의 개인과 기업으로 팔려나갔다. 재개발 조짐이 보이자 양동 지역 쪽방촌 주인들은 건물 수리나 부동산 매매 등을 이유로 기존의 세입자들을 내쫓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관련기사: 새해 쫓겨나는 '양동 쪽방촌'…건설사가 100억 들여 사들여)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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