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탄소금식과 생태적 회심

한윤정 전환연구자 2021. 3.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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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는 특정 종교에 소속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희로애락과 이런저런 성취, 좌절, 고통을 겪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구나’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질서나 힘이 작용하는구나’라고 막연히 느낀다. 이런 사람을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고 분류한다. 영성을 추구하지만 제도로서의 종교에는 다소 거부감을 갖는 경우다. 현대인들에게 흔한 믿음의 형식이기도 하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그럼에도 종교는 인류의 정신이 쌓아 올린 금자탑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 많은 구도자, 성직자, 순교자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개인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영성을 끌어내는 의례의 힘 역시 대단하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설명처럼 원시종교는 모두가 동의하는 무형의 믿음체계를 통해 인간세계의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문명을 탄생시켰다. 정치경제적 이익과 결탁해 유사 이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음에도 여전히 인간의 가장 훌륭한 마음인 자비와 사랑에 호소한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라는 가파른 위기 앞에서 주요 종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은 가톨릭과 기독교의 사순절(2월17일~4월3일)인데 많은 교회들이 ‘경건한 40일 탄소금식’을 실천한다. 사순절은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고 공생애를 준비한 40일의 기간을 상징하며 회개와 금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기이다. 개인적 회개도 중요하지만 인류 전체가 관련된 탄소중독이 중요한 회심의 주제가 된 것은 뜻 깊다.

많은 교인들이 육식 줄이기, 쓰레기 줄이기, 플라스틱 줄이기, 개인물병 사용하기, 대용량 제품 구매하기, 일회용품 쓰지 않기, 종이 쓰지 않기,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기, 전등 끄고 기도의 불 켜기 등 탄소금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지난 9일에는 60여개 기독교단체와 교회가 참여한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이 출범했다. 기독교는 코로나19 확산의 고비마다 방역수칙을 어기고 종교이기주의의 모습을 보였기에 일부의 호소가 더욱 절절하다.

종교계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가톨릭기후행동이 지난해 2월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보살피게 하소서”라는 문구를 봉헌하면서 먼저 출범했고, 5월에는 개신교에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며 기후위기녹색교회비상행동을 출범시켰다. 6월에는 불교기후행동이 “소유와 탐욕에 기반한 현재의 산업사회를 무소유와 무탐의 불교가치에 기반한 생태사회로 전환하는 데 힘을 모을 것”이라며 나섰고, 7월에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정신으로 원불교기후행동이 시작됐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서로 의존하며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불교), “코로나19 위기가 가져오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 ‘멈춰라, 성찰하라, 돌이키라’는 하느님의 통절한 외침을 듣는다. 생태적 회심을 통한 문명사적 전환을 요청하는 하늘의 명령과 땅의 호소에 응답하자”(기독교),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며 해와 달이 비추어주는 은덕을 누리고 있다. 개벽은 부모이신 자연과 만물을 내 몸처럼 존경하라는 경물사상을 실천함으로써 실현될 것이다”(천도교).

이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말을 들으면 나 같은 SBNR은 어떤 전율을 느낀다. 일상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신성함이다. 그래서 이참에 각 종단의 기후위기비상행동에 당부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정부를 향해 “기후위기를 비상사태로 선언하고 총체적인 대응을 위한 범국가기구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영성과 감성이 교인들의 마음에 충분히 스며들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심리학>(조지 마셜 지음, 이은경 옮김, 갈마바람)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사회변혁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가면 좋을지에 대한 답변이다. 원서가 나올 당시(2014년) 전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기후위기에 냉담했다. 저자가 생각한 방법은 “기후행동을 타협할 수 없는 신성한 가치로 만들어 종교적 지평에 놓는 것”이었다. 논리적 설명을 뛰어넘는 신성한 가치가 되면 사람들은 아무리 뜯어말려도 그 운동에 헌신한다. 이제 여건이 훨씬 좋다. 그럼에도 기후 문제가 종교적 지평에 놓이려면 멀었다. 정부는 종교인들이 요구하면 “종교인이니까”라며 무시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요구하면 들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5년 전 촛불혁명에서 배웠던 교훈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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