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윤여정에 대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남상훈 2021. 3. 1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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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나이 차 넘은 '재재'와 케미
'윤며들다' 신조어 이해하게 돼
닦달하지 않지만 엄격함 갖춰
원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배우 윤여정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녀가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LA와 보스턴 등지의 영화비평가협회와 미국 여성영화기자협회 등으로부터 수십개의 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고 해서가 아니다. 물론 그 소식에 고무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너무 멋진 일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최근 그녀가 어떤 인터뷰에서 들려준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지 않다. 어쩌면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그것 같기도 하다.
올 2월 방영되었다가 3월 영화 개봉과 더불어 다시 재방된 SBS 웹예능 ‘문명특급’은 ‘재재’라는 엠씨의 활약이 눈부시다. 스브스뉴스 PD와 콘텐츠 기획자, 유튜버, 작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인물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연예인이라고 부르기는 곤란할 듯하다. 그녀 말대로 ‘연예인 반, 일반인 반’이라고 할까. 어쨌든 새로운 매체 환경이 탄생시킨 미래형 신종 직업군에 속하는 것임에 분명한 이 인물이 윤여정을 인터뷰했다. 그녀 역시 인터뷰 초반 재재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부터 한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윤여정은 1947년생, 재재는 1990년생이다. 적어도 4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난다. 인터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모두 실감하겠지만 이 둘의 ‘케미’가 장난이 아니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문학평론가
인터뷰를 시작하며 재재는 그녀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그녀가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하자 그럼 ‘언니’라고 하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이에 그녀는 그건 좀 심하다며 “내 막냇동생이 69세인가 68세다”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선생도 아니고 언니도 아닌 그녀는 재재의 빨갛게 물든 머리를 가리키며 그렇게 염색하면 머리가 상하지 않냐고 묻는다. 재재가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녀는 자신처럼 늙으면 머리카락이 다 망가진다며 안타까워한다. 재재의 빨강 머리를 거부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지만 무조건 칭찬하거나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재재가 왜 그녀에게 ‘윤며들다’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윤여정에게 스며든다는 뜻이란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방영된 예능 ‘윤스테이’를 보고 그녀의 센스에 반해 버린 젊은 세대들이 그녀에게서 이제까지의 ‘어른’들과 다른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낸 듯하다. 비록 예능의 형식을 빌린 방송이기는 하나 그녀가 보여주는 어떤 덕목들, 예컨대 적절한 순간 터져나오는 재치와 유머, 후배들을 닦달하지 아니하되 잘못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엄격함, 그러나 최종적인 책임 앞에서는 전적으로 그 무게를 통감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성실함 등 소위 ‘꼰대’의 그것과 구별되는 그 무엇이 젊은 세대와의 교감을 가능하게 만든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윤며들’ 것까지 있겠는가. 이제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미국 오클라호마의 털사라는 곳까지 가서 호텔도 아니고 에어비앤비에 머무르며 ‘미나리’를 찍게 되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찍을 때 몸도 안 좋았고 회사에서도 돈도 안 된다며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 돈이 들어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신쯤 되면 여기 정착해서 TV나 영화를 할 때 어떤 감독도 연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 선생님 마음대로 하라고만 한다. 그런 환경에 있으면 ‘괴물’이 된다. 이게 매너리즘이다. 그런데 소통도 잘 안 되는 곳에 가서 미국 스태프에게 ‘what?’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nobody’가 되는 경험을 할 때, 그리하여 오로지 연기를 잘해서 이들에게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자신을 다잡을 때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 ‘도전’이다.

이런 여배우를 소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마음껏 찬양하고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한국영화 백년의 역사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 정말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 하나 더. 그녀는 거의 모든 모임에서 밥값을 계산한단다. 원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윤여정이었던 것이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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