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세상 속에서 찾는 진정한 나 [책과 삶]
[경향신문]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문학동네 | 276쪽 | 1만3500원
“언제까지나 이 구역의 미친년으로 남고 싶어. 그게 내 바람일 뿐이야. 흥.”
저자의 말이다. 더 정확히는 이 산문을 쓴 시인의 속내다. 서정적인 제목과 몽환적인 표지 사진에 혹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반전 매력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새 영역에 발을 들인 백은선 작가의 온갖 엄살과 겸손으로 시작한다. “무섭지만 어쩔 거야…불만 있으면 읽지 마. 혹은 제발 잘 좀 봐주세요.”
글투는 격식 없이 시원시원하지만 그가 뱉는 이야기 하나하나엔 ‘줄기’가 있다. ‘왕따’로 유소년기를 보내고 남은 건 눈치, 잃은 건 자존감이라는 고백. 기득권 남성들이 틀 지운 ‘문학소녀’처럼 보였겠지만 실은 누구보다 냉소적이며 회의에 가득 찼었다는 고백. ‘남자에게 여자는 변기’라는 말 따위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성평등에 무지했다는 고백. 고백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술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현재 엄마다. 이혼으로 아이를 혼자 키우지만 주민센터에서 돌아온 말은 ‘한부모가정’ 대상자가 아니란다. 비현실적인 소득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난지원금은 더 가관이다. 친권·양육권이 그에게 있는데도 딸의 몫은 아빠에게 지급됐다. ‘왜 아이는 제도 속에서 남성에게 귀속되는가.’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읽다보면 시인의 야생마 같은 반전 필력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한 인간으로서의 신랄한 자아 통찰은 사실 미끼다.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한 이유에 대한 변(辯)이랄까. 진짜로 하고픈 이야기는 가정폭력, 문학계 성폭력, N번방 등이었을 것이다. 책은 그것들을 ‘나’로 풀어내는, 굉장히 사적이면서 다분히 사회적인 산문이다.
임지영 기자 iimi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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