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

차준철 논설위원 2021. 3. 12. 20: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6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1990년 10월13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 생중계됐다.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 이를 소탕해 나갈 것입니다.” 그 유명한 ‘범죄와의 전쟁’이란 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폭력 범죄 소탕 선언인 동시에 강력범을 색출하는 작전명으로 여겨지며 1992년까지 지속됐다. 당시 경찰은 전쟁 선포 후 2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조직폭력배 1421명을 검거해 1086명을 구속했고 274개 폭력 조직을 적발해 와해시켰다.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선언은 국면전환용이었다. 대국민 연설 9일 전에 국군보안사령부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가 있었다. 게다가 대통령 지시에 부응하는 검거 실적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무리한 수사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가 잇따랐다. 전쟁 운운하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시민 불안을 키운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민생치안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상당한 지지를 받았고, 사회악에 대한 강력한 공권력 행사의 이미지로 지금껏 기억되고 있다.

관객 470만명을 동원한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조직폭력배들이 활개치던 바로 그 시절을 실감나게 그렸다. 범죄와의 전쟁이란 말이 영화 제목에 그대로 쓰일 만큼 강렬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인기를 모은 것도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친숙하게 만들었다. 최익현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숱한 유행어와 패러디를 낳으며 요즘에도 화제작으로 꼽힌다. “살아있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누구는 뭐 깡패수사 안 해본 줄 알아?” 등이 이 영화에 나온 유행어·명대사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잇따라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잡듯 샅샅이 뒤져 티끌만 한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 “전쟁한다는 각오로 불법·불공정 뿌리를 완전히 뽑기 위해 전력투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전쟁 선언이 말잔치로 그쳐서는 안 된다. 신속하고 강력한 실행만이 해결책이다. 시민 모두가 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