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 어째서 박신혜를 팬시한 전사로 만들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3. 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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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 박신혜표 팬시 아포칼립스 괜찮은 선택이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 어째서 진혁 감독은 강서해(박신혜)의 총에 팬시한 색깔을 덧칠했을까. JTBC <시지프스>에서 강서해라는 전사의 캐릭터는 우리가 해외의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흔히 봐왔던 그런 다크한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르다(이를 테면 영화 <레지던트 이블> 같은 작품의 밀라 요보비치 같은). 마치 장난감 같은 느낌을 주는 총에서 드러나듯이 다크하다기 보다는 팬시하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시지프스>가 그리는 아포칼립스 미래의 풍경에서도 마찬가지다. 폐허가 된 공간이지만, 그 곳은 어딘가 살풍경하다기보다는 빈티지샵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서해가 BTS의 '봄날'을 들으며 그 공간을 걸어 다니는 모습은 그래서 그가 마치 그런 공간 설정의 서바이벌 게임에 팬시한 캐릭터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 진혁 감독은 강서해를 이런 팬시한 캐릭터로 그려내려 했을까. 그리고 그건 과연 괜찮은 선택이었을까.

8회에 이르러 <시지프스>의 세계관은 모두 드러났다. 미래에서 업로더를 타고 과거로 온 시그마(김병철)가 미리 일어날 정보들을 바탕으로 경마에 주식, 선물 투자 등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김한용(전국환)을 이용해 한태술(조승우)의 퀀텀앤타임에 투자하게 만든다. 그가 향후 업로더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태술을 죽이고 그걸 빼앗으려는 시그마의 음모로 인해 핵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강서해는 그걸 막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온 것.

물론 타임패러독스가 존재한다. 미래에 다친 아버지의 항생제를 구하러 갔다가 자신을 추격하는 이들을 피해 하룻밤을 보내고 나온 강서해는 저편 폐허가 된 도시가 보이는 곳에서 자신의 유골을 마주한다. 유골과 함께 묻혀 있는 다이어리에는 과거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가 적혀 있다. 놀라지 말고 과거로 가 한태술을 구하고 미래를 구하라는 것. 하지만 과거에 죽은 강서해가 어떻게 미래에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논리적 모순이 존재한다.

타임패러독스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시지프스>가 굉장히 복잡하고 논리를 따질 만큼 심각한 SF 드라마는 아니다. 그저 정해진 미래(이미 시청자들은 그 미래를 다 봤다)의 아포칼립스적 상황을 막기 위해 시그마와 싸우는 강서해와 한태술의 고군분투가 드라마의 전편을 채우는 것. 그러니 사실상 강서해가 보여주는 '액션'은 <시지프스>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다.

팬시한 강서해 캐릭터는 다분히 <시지프스>라는 드라마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지금껏 그 많은 아포칼립스 장르들이 살풍경하고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한 미래의 폐허를 그려냈다면, <시지프스>는 폐허가 되긴 했지만 어딘지 빈티지가 느껴지고, 심지어 아날로그적 향수까지 불러일으키는 그런 세계를 그려보려 했을 거라는 짐작이다.

그러니 강서해라는 인물도 단순히 전사가 아니라 생일날 어려서 키가 작아 타지 못했던 바이킹을 여전히 타고 싶어 폐허가 된 놀이동산을 찾아가는 소녀가 겹쳐진 인물로 그려진다. 게다가 한태술과 만나 함께 싸우며 갖게 되는 감정들은 둘 사이의 로맨스 또한 기대하게 만든다. 그래서 단지 강서해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전사로만 그리기보다는 다소 팬시한 느낌을 더해놨을 거라는 것.

그 자체가 나쁘진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팬시함이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위급한 상황에서의 액션은 결코 팬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피, 땀, 눈물이 범벅이 된 절체절명의 숨 가쁜 액션이 더해져야 캐릭터의 팬시함이 자칫 리얼리티 부족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아쉽게도 <시지프스>의 강서해가 보여주는 액션은 강렬하다기보다는 어색한 동작과 연출 때문에 진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오히려 시그마가 과거로 날아와 미래의 정보를 갖고 막대한 자산을 모으며 음모를 꾸며가는 그 다크함이 <시지프스>에는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강서해 캐릭터가 팬시하면서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줬다면 독특한 아포칼립스 미래의 전사를 그려내는 작품이 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그려진 강서해 캐릭터는 강렬하다기보다는 팬시하기만한 단점이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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