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티 로드] 쑥·달래·더덕.. 집 나간 며느리 찾으려면, 봄 도다리쑥국 끓여라

글 손수원 기자 2021. 3. 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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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곤증 '영양제' 쑥과 달래, 매콤한 더덕구이
바다와 육지의 봄 전령이 만난 도다리쑥국. 지금 남해안으로 가면 한 해 중 가장 맛있는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

향으로 먼저 다가오는 쑥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웅녀의 자손이 아니던가. 그만큼 우리 조상은 쑥을 재료로 한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었다. 음력 7월 보름인 백중절에는 멥쌀가루에 어린 쑥을 버무려 쑥버무리(쑥설기)를 만들어 먹었다. 특이하게도 쑥버무리는 멥쌀의 양보다 쑥의 양을 더 많이 넣었다.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시기, 산과 들에는 쑥 향기가 진동한다. 누군가가 산 밑이나 들판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캐고 있다면 쑥일 확률이 높다. 그만큼 봄쑥은 향과 맛으로 겨우 내 얼었던 입맛과 마음을 풀어 주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남해안 지역에서 주로 먹는 도다리쑥국은 이즈음 가장 맛있는 제철재료의 만남이다. 맑은 국물에 도다리의 부들부들한 살과 햇쑥의 향이 어우러져 풍미를 더한다. 그래서 ‘집 나간 며느리를 찾으려면 가을에는 전어를 굽고 봄에는 도다리쑥국을 끓이라’고 했나보다.

쑥이 가진 독특한 향은 ‘치네올Cineol’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은 위액분비를 촉진시켜 소화기능을 돕는다. 밥만 먹으면 졸리는 춘곤증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쑥을 ‘애엽艾葉’이라 하여 ‘따뜻한 성질로 위장·간장·신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쑥은 술의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많이 마시던 압생트Absinthe라는 술이 있다. 이 술의 주재료가 바로 향쑥이다. 압생트라는 이름도 향쑥Artemisia Absinthuem에서 유래한 것이다.

압생트는 18세기 스위스에 살던 프랑스인 의사 피에르 오디네르가 향쑥을 사용해 만든 약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여러 주류 사업가에게 레시피가 전해지면서 알코올 도수가 50~80도에 달하는 독주로 바뀌었다.

압생트는 예술가의 술이었다. 고흐, 마네, 피카소, 헤밍웨이, 오스카 와일드, 에드거 앨런 포 등 역사에 기록된 예술가의 곁에는 늘 초록색 압생트 병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이 술을 마시면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해서 압생트는 ‘초록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압생트는 ‘에메랄드 지옥’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압생트에 의지한 많은 예술가가 비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압생트를 매우 좋아해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Cafe Table with Absinthe’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고흐는 압생트를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노란 해바라기가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것을 봤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 또 압생트를 마셨다. 압생트에 너무 의존한 고흐는 결국 압생트를 마시고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

물론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를 전적으로 압생트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야사野史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 지식인 사이에선 고흐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가 알코올중독과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원인을 압생트가 일으키는 환각증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에밀 졸라 같은 지식인들은 압생트 근절운동에 나섰고, 1900년대 초반 체코와 스페인을 제외한 전 유럽에서 압생트의 제조가 금지되기도 했다.

우리가 음식으로 쑥을 먹을 때는 독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다. 다만 여름에 다 자란 쑥에는 독성이 있을 수 있으니 잎 부분만 잘라서 먹는 게 안전하다. 또한 쑥으로 술을 담그면 독성이 생길 수 있으니 술과 쑥은 함께 먹지 않는 게 좋다.

음력 7월 보름인 백중절에 만들어 먹는 쑥버무리(쑥설기). 멥쌀가루에 어린 쑥을 버무려 먹는다.

떨어진 입맛 달래는, 달래

봄나물답게 이름마저 상큼한 달래는 향긋한 내음이 일품이다. 무채나 콩나물을 넣어 지은 밥 위에 간장에 싱싱한 달래를 다져 넣어 만든 달래장 한 숟가락을 끼얹어 비벼 먹으면 입맛 잃었던 사람도 금세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울 수 있다.

그뿐인가.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다 마지막에 달래 한 줌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내면 봄에만 맛볼 수 있는 달래된장찌개가 완성된다. 이런 향긋한 달래 향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불안해 잠 못 이루는 불면증에 효과가 좋다. 반대인 춘곤증에도 도움이 된다.

달래는 소화불량에도 효과가 좋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名醫 화타가 어느 주막에 들렀는데, 마침 소화불량으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이를 본 화타는 인근 야산에서 달래를 캐와 즙을 내 환자에게 먹였고, 그러자 곧 죽을 것 같던 환자의 증세가 싹 나았다는 것이다. 그 시대 이미 외과 수술을 했다는 화타가 쓴 마취제가 바로 달래다.

달래는 마늘과 사촌지간이다. 둘 다 백합과 식물이다. 백합과 식물은 대개 ‘알린Alliin’이란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알린은 쉽게 말하면 유황 성분으로, 그 자체로는 색깔이나 냄새가 없지만 찧거나 씹는 등 고유의 형태가 파괴되면 다양한 약리작용을 하는 ‘알리신Allicin’으로 바뀐다. 마늘을 씹었을 때 입안에 확 풍기는 알싸한 향을 내는 성분이 알리신이다.

알리신 성분은 피를 맑게 하고 양기를 북돋는 등 다양한 약리작용을 한다. 또한 달래에 풍부한 칼륨과 철분은 빈혈을 예방하고 고혈압을 개선시키는 역할도 한다. 봄에 달래를 더욱 열심히 먹어야 할 이유이다.

달래의 꽃은 ‘신의, 믿음, 지혜’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달래의 생존법과 관련이 있다. 달래는 한번 씨가 땅에 떨어지면 해마다 싹을 틔운다. 야생달래를 캐면서 실뿌리가 떨어지면 그 실뿌리가 다시 알뿌리가 되어 개체수를 늘린다. 때문에 달래가 자라기 시작하면 일부러 땅을 다 파헤치지 않는 한 영원히 달래가 자라는 밭이 된다.

향긋한 달래향이 가득한 달래무침.

‘산에서 나는 고기’ 더덕

산꾼들이 하나같이 좋아하는 냄새가 있다. 바로 자연산 더덕향이다.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오지 산이나 섬 산을 오가다 보면 유독 쌉싸래하면서도 향긋한 더덕 향이 난다. 이 향은 아주 진해서 바람을 잘 타면 수십 m 밖에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오래 묵은 더덕이 산삼보다 좋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약효가 좋다는 것이다. 예부터 산더덕은 산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향기롭고 살이 연해 ‘사삼沙蔘’이라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 더덕의 쓰고 쌉싸래한 맛은 사포닌 성분 때문이다. 산삼의 주성분과 같다. 10년 이상 된 자연산 더덕은 크고 씹는 맛도 좋아 ‘산에서 나는 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더덕을 즐겨 먹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치윤이 단군 때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기록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고려시대에 더덕을 나물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성의 밥상에 오르는 나물인 만큼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경남 거제시 동부면 갈곶이 해금강에는 천년 묵은 ‘동삼童參더덕’ 설화가 전한다. ‘동삼’은 어린아이 모습과 비슷하게 생긴 큰 산삼을 말한다.

옛날 거제 해금강에 천년 묵은 동삼더덕이 살고 있었다. 동삼더덕은 사람이나 짐승의 모습으로 변해 곳곳을 다녔다. 어느 날, 동삼더덕이 삼베옷을 입고 머리엔 갓을 쓴 상주喪主로 변신해 거제 읍내로 내려와 장을 봐 간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다.

이내 장터에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이 돌아다니는 상주만 보면 동삼더덕인 줄 알고 잡아놓고 “갈곶이 동삼더덕을 잡았다”고 외치면서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보시오. 나는 명진 사는 아무개요”, “나는 부춘 사는 아무개요”라며 신분을 밝혀도 주민들은 듣지 않았다. 동삼더덕을 잡아 팔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욕심과 불치의 병을 고치려는 욕망 때문에 애꿎은 진짜 상주들만 피해를 본 셈이다.

요즘 더덕은 흔하디흔하다. 물론 대부분은 인공 재배한 더덕이다. 산삼과 마찬가지로 더덕도 자연에서 그대로 자란 것이 최상품이다. 사포닌 함량이 달라 약효에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자연더덕은 구하기 어렵고 비싸니 인공 재배한 더덕이라도 맛있게 즐겨 먹으면 해로울 것이 없다. 더덕은 약용보다는 주로 음식재료로 사용하는데, 잘 두들긴 더덕에 고추장 양념을 펴 발라 구우면 불고기 못지않은 더덕구이가 완성된다. 장아찌로 만들어 먹어도 좋고 꿀에 재워 정과로 먹어도 별미다. 어린잎은 쌈이나 무침으로 먹기도 한다. 주당들은 봄 더덕을 들여오면 바로 술을 담근다. 더덕주는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술이다.

'본 기사는 월간산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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