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요한 반복이 아들의 닫힌 문을 열었다

최윤아 2021. 3. 1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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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 아들이 사회인 되기까지 직접 쓴 일기와 엄마의 글 묶어
20년 전 나에게 하고픈 말 "장애 빼고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봐"
아들 김상현이 초등학생 때부터 어엿한 사회인이 되기까지 쓴 일기들. 이진희 제공

아임 파인: 자폐인 아들의 일기장을 읽다

이진희·김상현 지음/양철북·1만5000원

“재현이 아빠 라이터로 장난을 하다가 얼굴을 데었다. 불장난은 정말 위험하다.”(아들 김상현)

“상현이 형 재현이가 아빠 라이터로 장난치다가 얼굴을 데었다. (…) 만약 상현이가 그랬다면 ‘장애가 있어서’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인지 아이의 행동을 자꾸 ‘장애’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나를 발견했다.”(엄마 이진희)

<아임 파인>은 자폐인 아들 김상현과 그의 엄마 이진희의 ‘교환일기’ 같은 책이다. 아들 상현이 먼저 그날의 사건을 기록하면, 엄마 이진희는 그 아래에 같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인식, 감정, 다짐 등을 덧붙인다. 흥미로운 건, 두 일기 사이의 시차다. 아들 상현이 스무살을 넘기자 엄마는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뒀던 아들의 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부터 쓴 일기는 15권에 달했다. 엄마는 이 가운데 146편을 고르고, 그때의 기억을 정성스럽게 복기해 뒤늦은 일기를 썼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저지른 실수와 경험들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누고 싶”었고, “이 글을 보고 나면 고마운 누군가가 우리 상현이를 조금은 더 고운 마음으로 봐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아들 상현이 처음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는 세 살이었다. 그해 겨울 엄마는 “가위에 눌린 듯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가 자폐성 장애라고? 2급은 또 뭐야? (…) 이런 건 영화에만 나오는 얘기 아닌가? 너무 혼란스럽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나도 묻고 싶은데, 세상은 나에게 다 알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매일 밤 질문에 시달렸다. 왜 하필 나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뫼비우스의 띠 같은” 질문이었다. 묻고 또 물어도 제자리였다.

마음을 다잡고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자기 자신이 아닌 아들 상현을 향했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 아들은 답했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 유치원 시절, 아들은 반향어(反響語·상대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증상)밖에 할 줄 몰랐다. 엄마는 아들이 해야 할 답까지 자신이 했다. “밥, 미역국, 불고기, 김, 김치 먹었어요.” 그렇게 수차례 반복하자 어느 날, 상현이 스스로 메뉴를 말했다. 엄마의 집요한 반복이 아들의 견고한 세계에 틈을 낸 것이다. 신이 난 엄마는 점점 난도가 높은 질문에 도전했다. 다음 단계는 ‘왜’ 였다. 엄마는 노트 한 권에 ‘왜?’ 가 등장하는 여러 상황을 적고, 매일매일 읽었다. 처음에는 노트에 적힌 대답만 하던 아들이 차츰 노트 ‘밖’ 문장을 말했다. 노트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대체로 자폐인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초등학생 시절 상현의 일기는 건조했다. ‘∼을 했다’의 반복이었다. 무엇을 느꼈고, 그때 감정은 어땠는지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상현이 성장할수록 사용하는 어휘가 눈에 띄게 풍부해진다. 서운하다, 반갑다, 걱정이 된다, 슬프다 등의 감정표현은 물론 “차 창문에 (맺힌) 빗방울 모양이 커튼같이 보였다.”, “건물들의 빛들이 많이 있어서 보석과 같았다”처럼 ‘사건’이 아니라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묘사하는 문장까지 등장한다. ‘슬펐다’가 처음 등장하는 아들의 일기 밑에 엄마는 이렇게 썼다. “예전에 상현이가 느끼는 감정이 삼원색 정도였다면 성인이 된 지금은 열두 색쯤 되지 않을까.”

아들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질 때마다 엄마는 성장통을 겪었다. “서울고등학교 축제에 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가지 말자고 해서 아쉬웠습니다.” 담담한 상현의 일기 밑에 엄마는 이렇게 적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첫 축제였다. 정말 가고 싶어 했는데, 내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움츠러들어 있었는지….” 아무리 ‘장애가 죄는 아니잖아?’라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어도, 주변 사람들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은 엄마를 주눅 들게 했다.

아들의 홀로서기를 믿고 지켜보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혼자서도 지하철을 탈 수 있다는 상현이 말을 믿고 해 질 무렵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갔다. 태연히 지하철에서 내리는 아이를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나친 염려증이다.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조금씩 손을 놓아준다는 것이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들이 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때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엄마는 이만큼 키웠다는 성취감보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된다. “아이가 교복을 벗으면 더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할 것 같았다. (…) 아이와 나만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한 IT회사에서 데이터 레이블링 작업을 하고 있는 김상현씨. 이진희 제공

이번에는 아들이 엄마를 안심시킨다. 고교 졸업 1년 만에 정규직 연구원으로 취업한 것이다.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인데,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상현을 3개월간 눈여겨보다 데이터 레이블링(Data labeling·인공지능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동영상 속에 일일이 명칭을 다는 작업)을 맡긴 것이다. 아들은 매일 아침 출근하고, 간식거리 한두 개를 사서 행복한 표정으로 퇴근하며, 주말은 책과 영화에 흠뻑 빠져 보낸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엄마는 20년 전 자신에게 편지를 띄운다. “지금은 인생이 끝난 것 같고 앞으로는 영원히 행복한 순간은 다시 없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 상현이는 네게 많은 웃음과 작은 성취감과 소박한 행복을 선물할 거야. (…) 상현이의 장애는 상현이의 전부가 아니야. 장애를 빼고 상현이를 자세히 들여다봐.”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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