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사소한 소원' 들려주렴

한겨레 2021. 3.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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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시작될 무렵이면 독서교실 어린이들과 '예언하는 글'을 써본다.

"나는 올해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다." "올해에는 선생님이 까드시고(까먹으시고) 단원평가를 안 할 때가 많다." "자리를 바꿔도 항상 땡땡이랑 앞뒤로 앉는다." "체육 시간에 한 번도 비가 안 온다. 미세먼지도 깨끗하다." 꼭 학교생활에 대한 것만 예언해야 하느냐고 묻는 어린이에게 다른 것도 괜찮다고 했더니 "친구네 강아지를 만져본다"라고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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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

전금자 글·그림/비룡소(2017)

새 학년이 시작될 무렵이면 독서교실 어린이들과 ‘예언하는 글’을 써본다. 올해 학교생활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일을 자기 암시 형식으로 적는 것이다. 평소에 ‘소원’이라고 하면 “우리 가족 모두 오래 살기”, “세계 평화” 같은 추상적인 내용이나 “돈이 엄청 많은 과학자 겸 농구 선수 겸 유튜버 되기”처럼 거창한 장래희망을 쓰는 어린이들도 이 주제로 글을 쓸 때는 태도가 달라진다. ‘올해 학교생활’이라는 제한 덕분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떠올리고, 노력하거나 운이 좋으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써내려간다. “나는 올해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다.” “올해에는 선생님이 까드시고(까먹으시고) 단원평가를 안 할 때가 많다.” “자리를 바꿔도 항상 땡땡이랑 앞뒤로 앉는다.” “체육 시간에 한 번도 비가 안 온다. 미세먼지도 깨끗하다.” 꼭 학교생활에 대한 것만 예언해야 하느냐고 묻는 어린이에게 다른 것도 괜찮다고 했더니 “친구네 강아지를 만져본다”라고 쓰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어린이의 일상을 이루는 작고도 중요한 일들을 엿보곤 한다.

좋은 그림책은 어린이의 사소한 순간을 크게 보여준다.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의 첫 장면, 두꺼비를 구해주느라 쪼그리고 앉은 훈이는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보다도 작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두꺼비를 풀숲에 놓아주는 훈이의 손과 이슬을 마시는 두꺼비는 화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크다. 두꺼비는 훈이에게 보답으로 사소한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며 훈이를 따라 학교에 간다. 등굣길과 교문 안, 교실로 가는 계단, 책상 서랍과 필통 속까지 훈이의 시선을 따라 이어지는 그림이 부드럽고 정겹다. 독자도 두꺼비가 어떤 보답을 할 것인지 궁금해하며 훈이네 교실로 따라가게 된다.

훈이는 전날 짝꿍과 싸운 일이 마음에 걸려서 짝꿍과 다시 친해지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두꺼비는 “그건 사소한 소원이 아니야”라며 거절한다. 미술 시간을 체육 시간으로 바꿔달라고 하자 시간표는 모두의 약속이기 때문에 사소하지 않다고 대꾸한다. 급식 반찬을 바꿔달라는 부탁도 편식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며 거절한다. 두꺼비가 태평한 얼굴로 잔소리만 늘어놓자 화가 난 훈이는 두꺼비를 필통 속에 가두어버린다. 대체 두꺼비는 어떤 ‘사소한 소원’을 들어줄까? 중요한 건 그 소원이 훈이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점이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기쁨도 마찬가지다.

“올해도 똑같을 것 같다. 이제는 등교가 더 귀찮다”면서 예언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던 어린이가 막상 학교에 다녀와서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새 담임선생님이 밥을 많이 드신다”고, “신발 사이즈 같은 친구 찾기 같은 게임을 해서 재미있었다”고, “몇 달 만에 만난 애도 있어서 엄청나게 반가웠다”고 한다. 코로나 상황이 당장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새 학년에는 어린이들의 사소한 소원이 많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김소영 독서교육 전문가, <어린이라는 세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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