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혼돈의 지구에 잘 정착하도록 늘 옆에 있어 줄게"

한겨레 2021. 3.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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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축하합니다] 조카 지민환에게 이모가 주는 글
왼쪽부터 아빠 지윤근씨, 지민환 아기, 엄마 이진씨. 이재성씨 제공

지난해 2월19일 새벽 3시 첫 만남
너무 기쁘고 신기해 웃다가 울기도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모습 보며
12년간 일한 내용 책으로 만들며
위대한 창작물 ‘생명의 탄생’ 실감

어느새 첫돌 지나 어린이집 ‘등원’
“쑥쑥 자라서 이모들과 여행 가자”

2020년 2월19일 수요일. 민환이가 우리 곁에 왔단다. 지구상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초록색 강보에 싸인 너를 보고 또 보면서 “발가락 손가락 개수 맞구. 탯줄 모양 좋구요. 머리 살짝 부운 거는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요.” 간호사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으며 너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았단다. 너는 새벽 2시에 태어났고 우린 새벽 3시에 웃으면서 울면서 너를 보고 있었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때여서 마스크를 쓰고 출산해야만 했던 네 엄마는 너무너무 힘들고 너무너무 아파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데 스스로가 ‘짐승’ 같아서 곁에 있던 네 아빠에게 나가달라고 했다지. 병원 복도로 쫓겨난 네 아빠는 노심초사하며 분만실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고.

네가 엄마 뱃속에서 뇌세포·근육·내장을 키우고 얼굴 모양이 잡혀갈 즈음 이모는 12년간 일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단다. 네가 눈·코 얼굴 윤곽이 확실해지고 심장이 뛰고 엄마의 감정을 똑같이 느껴갈 때 이모의 책도 형태가 잡혀갔지. 얼개를 짜고 원고를 분류하고 제목도 정하고 표지를 디자인할 때, 너는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듯 했어. 웃고 화내고 찡그리고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자주 엄마 배를 찬다고 했지.

그렇게 이모는 교정을 보며 책을 마무리하고 엄마는 너를 키우고 있었지.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물리적 탄생과 작품을 쓰는 정신적 창작에 대해서 비슷한 거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모는 엄마가 너를 잉태하고부터 출산하기까지를 지켜보면서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오는 일이 그 어떤 창작물보다도 고통스럽고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단다. 물론, 좋은 작품이 감동을 주기도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기도 하지만.

이모가 오래전에 했던 일들을 들춰보며 글로 정리하고 있을 때, 엄마는 너로 인해 겪는 몸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육아에 대한 책과 인터넷을 보며 네가 태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공부를 했단다. 정윤이 이모는 소창(순면)을 사서 세 번을 삶고 세 번을 햇빛에 말려 지저귀를 만들고 유기농천으로 포대기와 배냇저고리를 짓고 모자와 발싸개 손싸개를 지었단다. 근데 손싸개, 발싸개는 너무 작게 만들어서 딱 한번밖에 써 보지 못 했지.

우린 아직도 너를 대하는 일이 서툴고 미숙하단다.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너는 쑥쑥 자라서 어디든 붙잡고 걷는 걸 보면 위태로우면서도 대견하단다. 특히 네가 소파를 잡고 처음으로 엄마아빠에게 걸어가서 코를 찡긋했던 날은 네가 태어난 날만큼이나 감동이었다. 그날도 웃는데 눈물이 났었지!

2021년 2월19일 첫돌을 맞은 지민환 아기. 이재성씨 제공
잠자는 지민환 아기. 이재성씨 제공

이제 민환이는 1살이 되었고 이도 12개나 나왔고 어설프게나마 맘마, 엄마, 아빠라고 말도 하는 기특한 아가로 자라고 있구나. 가만히 혼자 섰다가 꽈당 주저앉기도 하고,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머리를 부딪쳐 울기도 하고, 서랍의 기저귀를 꺼내서 던지고 책꽂이 책을 빼서 찢기도 하고…, 이것이 요즘 너의 놀이란다. 말썽쟁이가 되어가는 민환이는 2021년 3월3일 처음으로 아빠와 함께 마스크를 쓰고 어린이집에 가서 30분간 놀다가 왔지. 엄마아빠의 육아휴직이 끝나가서 코로나19 시대에 너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온 가족에게는 마음 쓰이는 일이었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민환아! 오늘은 엄마가 네가 늘어져 자는 사진을 이모한테 보내고는 발레리노 같다고 해서 웃었단다. 우리가 보기엔 송창식 아저씨가 가나다라마바사~ 하고 노래하는 모습 같았거든. 아빠와 엄마는 아직도 너한테 폭 빠져서 예쁘고 미운 것을 구별 못 하고 너의 모든 것을 예뻐하고 사랑하지. 이모들은 그런 엄마를 놀려댄단다.

민환아, 이 혼돈의 시기에 네가 이 지구상에 정착했고 이 시기를 잘 건너가려면 오감이 파릇파릇하게 살아 있는 젊은이로 자라야 할 거야! 이모들이 늘 옆에 있을게. 자연의 리듬을 타면서 살고 벗들과 더불어 춤출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얼른 커서 이모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술도 한잔하자!

서울/이모 이재성, 엄마 이진, 아빠 지윤근

· 원고를 기다립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4년째를 맞아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또는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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