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 윌리엄스와 '잡초' 수베로..두 외인 감독의 시간이 온다

김양희 2021. 3. 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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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외국인 사령탑 첫 KBO리그 맞대결
윌리엄스 감독 '선 굵은 야구'
양현종 빈자리 채우기 한창
"이기는 야구로 올해엔 목표 달성"
수베로 감독 '디테일한 야구'
수비 시프트·출루율 등에 신경
"신뢰쌓기 최선, 생각하는 야구"
맷 윌리엄스 기아 타이거즈 감독과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연습경기를 치르기 전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9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1루 더그아웃에는 카를로스 수베로(49) 한화 이글스 감독이, 3루 더그아웃에는 기아(KIA) 타이거즈 매트 윌리엄스(56) 감독이 자리를 잡았다.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는 KBO리그에서 펼쳐진 낯선 풍경. 그동안 제리 로이스터(롯데 자이언츠), 트레이 힐만(SK 와이번스) 등의 감독이 시차를 두고 리그를 거쳐 갔으나 외국인 사령탑끼리의 맞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윌리엄스 감독과 수베로 감독은 미국에서 다른 야구 경험을 했다. 윌리엄스 감독이 홈런왕 등을 거친 메이저리그 올스타 선수였다면 수베로 감독은 마이너리그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 때만 놓고 보면 화초와 잡초였다고나 할까.

지도자로서도 윌리엄스 감독은 워싱턴 내셔널스 사령탑 시절 ‘올해의 감독상’(2014년)까지 받았다. 수베로 감독이 이날 처음 경기장에서 마주한 윌리엄스 감독에 대해 “(미국에서) 굉장히 훌륭한 선수, 지도자였다”라고 말한 이유다. 수베로 감독은 마이너리그 사령탑 시절 선수 육성, 발굴에 탁월한 면모를 보이기는 했으나 빅리그에서는 코치로만 있었다. 두 감독의 경기 운영 방식도 결이 아주 다르다. 윌리엄스 감독은 작년 기아에서 보여줬듯이 선이 굵은 야구를 하는 반면 수베로 감독은 수비 시프트, 출루율 등에 신경 쓰는 디테일한 야구를 한다.

두 감독은 경기 전 훈련에 앞서 간단한 담소를 나누기도 했는데 “연습경기 진행 방법, 한국 야구 스타일, 팀 플레이 같은 얘기들”(수베로 감독)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사전 합의한 대로 두 팀은 각 투수의 투구 수에 맞춰 경기를 진행했으며 예정된 투구 수가 채워지면 아웃카운트에 상관없이 이닝 교대를 했다. 0-3으로 뒤진 한화의 5회말 2사 만루 공격에서 이닝 교체가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기는 3-0, 기아의 승리였으나 경기 승패는 무의미했다.

한국 야구 데뷔 시즌을 앞둔 수베로 감독은 스프링캠프 동안 ‘신뢰 쌓기’에 가장 신경 썼다고 했다. 캠프 내내 선수들 이름을 외우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고 지금도 선수 개개인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 애쓰고 있다. 그는 “(동서양) 문화 차이가 있는 만큼 감독이 아니라 사람으로 신뢰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한화는 고참 선수가 대거 은퇴·이적을 하면서 현재 팀 리빌딩 과정에 있다. 평균 나이(25.8살)만 놓고 봐도 리그에서 가장 어리다. 작년에는 10개 구단 최고령 팀(평균 나이 28.5살)이었다. 한화가 선수 보는 눈이 탁월한 수베로 감독을 영입한 이유다. 연습경기 동안 그는 어린 타자들에게 “자기만의 타격존을 설정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스트라이크존 전체를 공략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때릴 수 있는 스트라이크존을 노리는 ‘생각하는 야구’”를 강조하는데 “노시환 등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날 한화 더그아웃에서는 선수들이 볼넷을 얻어 출루할 때마다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생각하는 야구’의 연장 선상에서 볼넷도 안타만큼의 대접 받는다. 수베로 감독은 출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날 한화가 얻어낸 볼넷 수는 5개였다.

기아 선수들과 2년째 호흡하고 있는 윌리엄스 감독은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으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1년 전 선수들과 처음 대면했을 때의 낯섦은 사라졌다. ‘선수 이름 발음하기 미션’도 작년 시즌을 치르면서 익숙해졌다. “‘황대인’처럼 영어 이름에 ‘HW’가 들어간 선수는 아직도 발음이 어렵지만”(윌리엄스 감독) 말이다.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이 미국야구에 진출하며 생긴 선발 빈자리에 대한 물음표는 아직 지우지 못했다. 에런 브룩스, 다니엘 멩덴 두 외국인 선수에 임기영, 이민우가 3~4선발을 맡고 이의리, 장현식, 김유신, 김현수가 현재 5선발을 놓고 다투고 있다. 마무리 전상현이 어깨 통증으로 이탈하면서 “경기 후반 던질 투수를 어떻게 채울지도 고민”이다. 윌리엄스 감독은 “모든 선수에게 기회가 열려 있고 경쟁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다”고 했다. 5선발 후보 중 한 명인 장현식은 이날 경기에 선발 등판해 최고 구속 시속 147㎞의 빠른 볼을 앞세워 2이닝 1피안타 무실점의 투구를 보여줬다.

윌리엄스 감독은 “작년에는 주변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이었다. 올해는 그 관계를 기반으로 한결 편해졌다”면서 “작년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꼭 이루려고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기는 야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대전/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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