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의 마법'에 걸린 드라마.. 브레이크가 없다
지상파 메인으로 등극
아침 시간대 '재밋거리'로 치부되다
시청률 상승하자 '신분' 뒤바뀌어
메인뉴스 직전에 방영하는 간판 돼
'순옥드' 즐기는 시청자
기승전결이 아닌 기결기결 속도감
개연성과 현실성은 안중에도 없어
"아예 판타지물로 보면 더 흥미진진"
남은 과제들 뭔가
학폭과 살인 등 노골적인 묘사 급급
방송국 고민이나 문제의식 안보여
청소년 노출에 안전장치 마련해야
◆‘순옥드’를 즐기는 시청자
이들은 김순옥 작가의 막장드라마 계보를 열거하며 ‘순옥드’라 부른다. 소셜미디어에 퍼져있는 ‘펜트하우스 시청 유의사항’에는 순옥드에 대한 애정이 흘러 넘친다. ‘순옥드는 산으로 가지 않는다. 산에서 시작해 안드로메다로 간다’, ‘순옥드에 ‘왜’란 없다. ‘와’만 있을 뿐이다’, ‘순옥드에 의문 가지는 사람은 펜트하우스 볼 자세가 안 돼 있다’, ‘시체 없음 뭐다?’, ‘부검할 때까지는 죽은 게 아니다’의 내용으로 된 5계명이다. 이들은 이 5계명을 퍼뜨리며 “달달 외우자”고 다짐한다. ‘#순옥드는아무생각없이보는것이다’, ‘#순옥드는끝나도끝난게아니다’처럼 추신 같은 해시태그를 덧붙인다.
‘과몰입 방지’라는 글귀를 붙여 확산시키는 게시물들은 이들이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상기시키며 거리두기를 하는 집단지성을 발휘 중인 것은 아닐까, 희망적 해석까지 하게 한다. 악역인 배우들이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 순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공유하며 ‘과몰입방지위원회’, ‘과몰입방지턱’과 같은 문구를 붙이는 식이다. 현실이라면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 적어 놓은 길고 긴 적용 범죄목록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들의 태도가 달라진 데에는 김순옥 작가의 과거 인터뷰가 다시 회자된 이유도 커 보인다. 2011년 모교 대학생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다. 막장드라마라며 비난을 받고 있다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나쁜 바이러스를 대중에게 주는 나쁜 짓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에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때가 ‘아내의 유혹’을 할 때였는데, 드라마 하는 시간에 (병원에서) 사람들이 다 모여가지고 그것을 넋을 놓고 보더래요. 그때 그 사람들은 정말 괴로운데 사람들이 그 시간 40분 동안에는 고통이나 자기가 혹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잊게 해줬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졌어요.”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방식이 다매체·다채널화됐고, 동시에 전 세계 온갖 드라마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이 같은 현상이 가능했다고 진단했다.
막장드라마를 하나의 유형으로 인정하고 시청자들이 고유의 시청 방법을 정해 향유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막장 요소가 주는 쾌감은 강점으로 효용성을 갖게 하면서도, 시청자들이 성숙한 거리두기를 하면 막장드라마가 현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차단될 수 있어서다.
수용자인 시청자들에 비해 공급자인 방송사의 태도는 씁쓸하다. 가령 SBS 공식 트위터 계정이 방송을 홍보하기 위해 올린 게시물들을 보면 선을 넘는다.
지난 5일 SBS는 5회 장면 중 여고생인 하은별이 친구 배로나를 죽게 해 하얀 드레스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의 스틸컷과 함께 ‘청아예술제의 미친 결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2일 올린 게시물에는 ‘갈매기까지 죽이는 펜트하우스2. 2회 2사망. 방심할 수 없는 사망씬’이라고 했다. 사회적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부상한 시점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막장 요소만 팔겠다는 심산도 노골적이다.
가상의 설정임을 주지하고 19세 이상 시청가능 등급임을 표기하는 드라마와 달리, SNS는 청소년 보호 시간대와 상관없이 무차별 노출되는 만큼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지난 1월 시즌1이 왜 방송통신심의원회로부터 법정 제재를 받았는지도 잊은 듯하다. 펜트하우스2와 같은 자극적 드라마를 앞으로 지상파 안에서 어떻게 배치하고 방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의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제작 자체 못지않게, 적절하게 즐기고 사회가 소화할 수 있게 하는 장치도 중요하다. 정 평론가는 “지상파도 콘텐츠의 자유도를 넓혀주고 다양한 콘텐츠를 다 담을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등급을 정확히 매기는 장치처럼 보는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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