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좌석 거리두기' 객석과 서글픈 사연..연극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

이재훈 2021. 3. 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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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경기도극단, 연극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 2021.03.09. (사진 = 경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수원=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대와 객석을 구분할 수 없었다. 지난 6일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경기도극단의 연극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는 관객이 공연과 함께 객석을 바라봐야 했다.

무대 뒤편에 가설 객석에 앉아, '진짜 객석'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큰 공연장의 객석을 비우고, 무대 위에 객석을 만든 공연들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 비워진 1500석의 객석을 100여명의 관객과 마주하고 있자니, 공연계의 슬픔이 차올랐다.

코로나19로 작년에는 마치 공연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객석은 '좌석 거리두기'로 비워졌으며, 공연장의 문은 닫는 날들이 더 많았다. 무대에서 공연은 진행됐지만, 객석은 비워진 채 스크린 너머로 이를 지켜봐야 하는 '온라인 공연'이 성행했다.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도 작년 같은 장소에서 스트리밍으로 미리 선보였다. 오프라인 초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형식적인 유연함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는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린다.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통하는 스웨덴 출신의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1849∼1912)의 '꿈의 연극'을 일본 작가 마츠이 슈가 재창작한 작품. 한태숙 예술감독이 이끄는 경기도극단이 2020년 국제교류사업의 하나로 페스티벌 도쿄와 공동제작했다.

우선 이야기는 원작과 큰 줄기가 같다. 원작은 신의 딸이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삶과 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 역시 자신이 신의 딸이라 믿는 아네모네가 하늘세계에서 인간세계로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다만, 아네모네는 인간의 삶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닳아 없어진다.

약 120년 전 희곡이지만, 경기도극단 김정 상임연출은 전혀 이질감 없이 이를 무대로 옮겨낸다. 공연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두산연강재단의 제9회 두산연강예술상에서 공연부문 수상자다.

꿈 속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시간·공간을 뛰어넘는 원작은 삽화 같은데, 만화 컷 같은 김 연출의 형식적 연출과 접점을 이룬다.

[수원=뉴시스] 경기도극단, 연극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 2021.03.09. (사진 = 경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연극 속 의상·조명은 화려하다. 그리고 배우들의 몸짓과 행동은 다소 과장돼 보인다. 하지만 과도하진 않다. 재기가 번득이지만, 위트도 과시하지 않는다.

무대는 미니멀리즘의 정점이다. 벌거벗은 나무 두 그루가, 무대 한 켠에 오도카니 서 있다. 문을 형상화한 네모난 틀이 무대 곳곳을 오가며 각종 공간을 만들어낸다. 두 연주자는 신시사이저 같은 악기는 물론 소리가 나는 '닭 인형' 등을 활용해 다양한 소리를 빚어낸다. 괴상한 형태의 마스크를 비롯 코로나19 정경들을 풍자한 장면도 여럿이다.

이를 통해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는 우리의 삶을 환기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 아네모네가 겪는 인간의 삶은 우리의 일상을 반영한다. 변호사와 결혼한 아네모네는 가난, 추위 등에 시달리고 부부싸움을 하며 지난한 삶을 보낸다. 곤궁한 인간을 구원하려 하지만, 피폐해지고 병드는 것은 아네모네다.

결국 아네모네는 '아네모네 꽃'을 즈려 밟고 이 세계를 떠난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배신', '속절 없는 사랑', '사랑의 쓴 맛' 등이다. 다양한 꽃말을 가진 아네모네는 서글픈 사연도 많다. 신의 딸 아네모네도 그렇다.

하지만, 연극이 어두움과 불안만 조장하는 건 아니다. 아네모네는 인간들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잘 있어. 바이 바이. 아네모네 꽃을 보면 나를 떠올려줘." 절망 속에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건, 그래도 희망이 섞여드는 대목이다. 삶에 비감을 토로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때에 마냥 낙관만 가득하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아네모네 역의 배우 이애린 호연을 비롯 배우들의 앙상블도 탄탄하다. 1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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