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바깥길] 재채기 예절과 마스크

한겨레 2021. 3. 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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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바깥길]이상헌의 바깥길
유럽은 여전히 바이러스 전투의 최전선에 있다. 서로의 건강을 지킨다는 뜻은 같을 터인데 재채기 예절과 마스크 착용이 이리도 다르다. 이 다름의 이유를 알지 못함은 필시 내가 바깥에 오래 살고도 이방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내가 태어난 곳을 떠난 지 25년이 지났다. 대략 삶의 절반을 ‘유럽’이라 불리는 바깥에서 보낸 셈이다. 고국이라고 하지 않고 “태어난 곳”이라고 한 것은 고국이라는 단어가 딱딱하고 준엄하여 영영 돌아가지 못할 곳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고국’이라고 말하고 나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곳. 고향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그곳에서 살 때도 옮겨 다녔다. 지금은 사천이 되어버린 삼천포에서 십년, 부산에서 십년, 서울에서 십년을 보냈다. 내 피를 당기는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내 고향은 여전히 ‘순환’하고 있다. 덕분에, 몸은 떠돌고 마음은 부산하다.

곤란한 일도 많다. 바깥에 산다고 해서 바깥 사정을 묻는 경우가 그렇다.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전문가 ‘후광’을 끌어다가 어찌해보겠지만, 복잡하고 넓은 세상사를 물어오면 난감하다. 유럽의 정치 상황은 나도 여느 한국 사람처럼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안다. 유럽 뉴스를 한국 포털에서 듣기도 한다. 간혹 세세한 사정을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정도가 바깥살이의 이점이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정보가 신통치 않거나 틀린 경우도 적지 않다. 유럽 정치의 민감한 내막은 유럽 친구들도 잘 모른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친구라면 정보의 편향성도 감수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해서 잘 모르겠다 하면 묻는 쪽은 성의가 없다고 섭섭해할 터라, 짐짓 아는 척하기도 한다. 또 그런 어정쩡한 답을 저쪽에선 대단한 것인 양 고마워할 때 나는 속수무책 뒷머리만 긁적인다.

아무래도 가장 조심스러운 것은 내 편견을 바깥에서 만난 편견으로 증폭시키는 경우다. 유길준이 19세기 말 유럽을 오랜 시간 다녀온 다음에 꼼꼼한 기록으로 남긴 <서유견문>에는 풍요로운 서양에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라고 적혀 있다. 또 새로운 공장 기계를 경탄하면서 “이따금 못난 자들이 뜻있는 사람들의 … 위대한 공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 정교한 기계를 깨뜨려 부쉈다”고 한탄했다.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운동)에 대해 아마도 한국 최초로 적어둔 이 책은 기계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정은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실업은 곧 게으름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깥의 ‘힘’을 빌려 나의 편견을 정당화하는 방법이다.

위안이 되는 길잡이도 있다. <열하일기>는 ‘황제의 나라’ 중국 청나라를 찾아 나선 박지원의 복잡한 심사를 기록했다. 중국의 화려한 문물에 눈이 멀어 탄성만 쏟아내는 부류와, 그래 봐야 싸움질이나 잘하는 오랑캐라고 무시하려는 부류 사이에서 연암은 “삼류 인사”를 자칭한다. 자신이 본 장관은 자금성도 아니고 “머리란 머리는 죄다 깎아버린” 권력층도 아니고, 길거리에 흔한 “깨진 기와”와 “똥거름”이라 했다. 깨진 기와를 버리지 않고 집과 담장을 알뜰하게 장식하고,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물건”인 똥오줌을 모아 네모반듯하게 쌓아두는 것을 보고, 일상적인 삶을 이롭고 정갈하게 하는 문물의 고갱이를 눈치채었다. 그래서 연암은 “천하의 문물제도는 벌써 여기 버젓이 서 있음”을 보았다고 단언했다.

나의 “깨진 기와”와 “똥거름”은 이곳의 재채기 예절이었다. 한국에서 재채기는 자유로움의 영역이었다. 침 뱉는 것은 째려봄의 대상이었지만, 재채기는 막힌 몸을 푸는 행위로서 더러 주위에서 같은 표정을 지어가며 응원까지 해주었다. 거침없이 해도 좋은 것이요, 호탕한 재채기에는 시원하겠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그런데 바깥은 달랐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손수건이나 휴지로 입을 틀어막든지, 아니면 옷소매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남에게 병균을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실례했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렇게 하라는 법은 없지만, 싸늘한 눈치와 무거운 공기는 법보다 더 선명했다. 게다가, 조금 성가시더라도 남의 건강을 살뜰히 챙기려는 공동의 노력이 아닌가. 그 노력이 ‘위대’해 보여서, 한국인의 재채기가 난데없이 ‘야만’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연암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그들의 “문물제도가 여기 버젓이 서 있음”을 보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재채기를 하면 옆에 있는 영국 사람들은 “신의 은총을!”, 프랑스와 독일 사람들은 “건강하라”는 인사를 알뜰하게 전한다. 이런 인사법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말들이 있다. 재채기를 하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종교적’ 염려도 있고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 시절의 섬찟한 경험 탓도 있다고 한다. 여하간 타인의 건강과 영혼을 걱정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유럽 사람들은 느리다는 편견을 단박에 깨줬다. 내가 가끔 사무실에서 재채기를 해‘실례’를 범하면, 10m가량 떨어져 있는 동료가 순식간에 반응한다. 어찌나 빠른지, 재채기 소리보다 동료의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는 착각마저 든다. 모두 입으로 만들어낸 풍경이고 의례일지언정, 내게는 저 공동체적 배려심이 에펠탑보다 높고 버킹엄궁전보다 장엄했다.

하지만, 오래 살다 보니, 나의 “깨진 기와”가 와장창 부서지기도 한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타인의 건강을 지키고 서로 걱정해주는 재채기 에티켓이 이 정도라면, 나는 유럽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다른 안전조치에 따라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마스크 착용이 처음부터 어려워지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애를 먹었다. 마스크 공급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그나마 있는 마스크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피했다. 마스크가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도시 곳곳에 항의 시위도 벌어졌다. 다른 방역조치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유럽은 여전히 바이러스 전투의 최전선에 있다. 서로의 건강을 지킨다는 뜻은 같을 터인데 재채기 예절과 마스크 착용이 이리도 다르다. 이 다름의 이유를 알지 못함은 필시 내가 바깥에 오래 살고도 이방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래저래 바깥에 살면서 바깥을 잘 알지 못한다. 앞서 편견이 가득한 책이라고 불평했던 <서유견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파리에 괴상한 질병이 크게 번지자 파리의 여러 의사들이 심력과 기술을 다하여 치료법과 예방법을 실시하였는데, 어리석은 소인배들은 괴상한 질병이 전염된다는 사실은 모르고 도리어 의사들을 탓하였다. 의사가 독약으로 사람을 해친다고 생각하여 흉악한 사람같이 적대시하였으며, 심한 경우에는 상해를 입히기까지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나는 그걸 읽고는 ‘그렇지’ 하며 장단을 맞추었다. 또, 이렇게 줏대 없는 나를 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상헌 ㅣ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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