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항 물건 내리는 데만 열흘.. 글로벌 '하역 대란'
바다에 뜬 채로 순서 대기
지난달 26일 미국 서부 LA항 앞바다에 도착한 국내 해운사 HMM(옛 현대상선)의 8600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커리지호는 꼬박 8일을 기다려 물건을 내릴 수 있었다. 최근 해운 물동량이 급증해 컨테이너선들이 주요 항구로 몰리면서 하역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부산항을 떠난 HMM 소속 상하이호는 LA항 도착 후 열흘을 더 기다려 이달 14일에야 물건을 내릴 수 있다는 통보를 최근 받았다. 통상 하역 대기 시간은 2~3일 정도지만, 지금은 평균 9일 이상 걸린다. HMM 관계자는 “해운 물량이 급증한 데다, 항만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무더기로 나오면서 작업도 수시로 멈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컨테이너선 운항 효율이 떨어져, 지난해 연말 급등한 해운 운임이 새해 들어서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해운 운임 급등과 선박 부족으로 인한 수출 기업들의 어려움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몰리는 컨船... 하역 못하고 대기만 열흘
컨테이너 운임은 지난해 코로나 대유행 직후 급락했다. 수출입이 얼어붙으면서 운임 대표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작년 초 1000선에서 5월 말엔 850선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중국 경제가 급속히 회복하고 미국도 셧다운(봉쇄) 조치를 해제하면서 해운 물동량이 급증했다. 작년 12월엔 해운 운임이 5월 대비 3배 수준까지 뛰었다. 수출 기업들은 웃돈을 주고도 선박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이 때문에 해운사들이 임시 컨테이너선을 투입하면서 선박 공급이 늘었고, 해운 운임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글로벌 항만의 처리 능력이 문제가 됐다. 선박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하역 적체가 빚어진 것이다. 현재 미 서부의 대표 항만인 LA항과 롱비치항 앞바다에는 35척 안팎의 컨테이너선이 하역을 기다리며 떠 있다. 이 같은 대기 선박 수는 역대 최고에 근접한 수준이다. 그만큼 화주(貨主)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선박은 부족해진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바다에 떠 있는 배는 늘었지만,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선박은 거의 늘지 않았다”며 “당분간 운임 고공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수 안 되는 박스... 배 대신 열차 이용
하역 지연은 컨테이너 박스 부족 현상을 낳고 있다. 최종 목적지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모두 비워지고 나야 빈 박스에 새로 물건을 채워 실어나를 수 있다. 하지만 물건을 못 내리면서, 빈 컨테이너 박스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물건을 배송하는 화주와 해운사들은 컨테이너 박스를 구하기 위해 직원을 동남아나 중국 등에 보내기도 한다.
컨테이너 박스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6m짜리 새 컨테이너 박스 가격은 작년 초 1800달러에서 현재는 3500달러로 뛰었다. 하지만 전 세계 컨테이너 박스의 약 80%를 생산하는 CIMC와 DFIC 등 중국 제조업체들은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 유럽의 해운전문 매체인 ‘헬레닉 시핑 뉴스’는 “중국 업체들은 제품 단가를 올리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선박을 구하지 못한 화주들은 철도와 항공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그동안 유럽 공장까지 배로 보내던 일부 배터리 부품을 최근엔 철도로 돌렸다. 중국까지는 배로 보내고, 이후엔 중국횡단철도(TCR)를 이용해 유럽까지 나르는 것이다. 급하게 물건을 보내기 위해 항공을 이용하는 업체도 늘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최근엔 자동차 전장 부품을 항공기로 보내는 업체들이 늘었다”며 “선박을 구하지 못한 업체들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항공 화물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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