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원칼럼] 西로 간다 하고 東으로 가나

강호원 2021. 3. 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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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개발 공직자는 '땅 투기'하고
靑·여당은 법 바꿔 '비리' 감추고..
상식이 휴지조각 된 '빚더미' 나라
국민은 무엇으로 미래 희망 품나

‘경재잠(敬齋箴)’. 퇴계 이황이 중시한 잠언이다. 주요 부문을 뽑아 ‘성학십도’의 아홉 번째 경재잠도를 만들었다. 원래는 주자의 글이다. 발췌하면 이렇다.

“의관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상제(上帝) 대하듯 하라. 땅을 밟을 때는 개밋둑도 밟지 말라. 입 다물기를 병마개처럼 하고 사욕 막기를 성(城)과 같이 하라. 서로 간다 하고 동으로 가지 말며 북으로 간다 하고 남으로 가지 말라. 잠깐 새 틈이 생기면 사욕이 만 가지로 일어 불이 아니라도 뜨겁고(不火而熱) 얼음이 아니라도 차가워진다(不氷而寒).”
강호원 논설위원
이 글은 ‘경(敬)’을 실천하는 방도이기도 하다. 퇴계는 이를 벽에 걸고 자나 깨나 봤다고 한다. 이런 말을 덧붙인다. “세상의 많은 불미한 일은 오직 구(求) 한 글자를 좇아 일어난다. 의(義)를 좇고 이(利)를 좇지 않는다면 죄와 욕은 면하리라.”

콧대 높은 조선의 선비들. 그들은 퇴계를 태산북두로 여겼다. 왜? 그가 명경처럼 맑기 때문이다. 사욕과 부패, 패당과 세도에 얼룩진 조선. 그의 말과 행동은 구원의 메시지였을까. 거센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던 조선이 그가 숨진 뒤에도 300년 이상 버틴 배경에는 그의 정신 유산이 한몫했을 법하다. 퇴계는 혼돈을 밝히는 등불이다.

지금은 어떨까. 제 편이 아니면 증오를 퍼붓고 짓밟는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식과 도덕의 최소한’인 법마저 바꾼다. 궤변은 홍수를 이루고 상식은 설 자리조차 없다. 입으로는 서로 간다 하고, 걸음은 동으로 향한다. 그 실상은 어떨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땅 투기. 4년 내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더니, 공공개발을 주도하는 LH 임직원들이 투기판을 벌였다. 자신이 개발하는 땅에서. 그들만 그랬을까. 다른 공직자는 깨끗한 걸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뭐라고 했던가. 조사를 하기도 전에 “땅을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이라고 했다. 전수조사를 외치는 청와대와 여당. 정작 조사를 주도하는 곳은 LH 사장 출신이 장관을 꿰차고 앉은 바로 그 국토부다.

국민 믿음을 배신한 공공기관. 좌절한 청년들은 “우리는 ‘영털’을 당했다”고 하소연한다. 왜 검찰과 감사원에는 조사를 맡기지 않는 걸까. 샅샅이 뒤지면 감당하기 힘든 파문이 터질까 두렵기 때문일까.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윤석열 전 총장. 이런 말을 했다.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그만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많은 진보 지식인조차 똑같은 말을 한다. 과거 문재인캠프의 공익제보위원장이었던 인사도 비판한다. “중수청 설치 음모는 친위 쿠데타”라며, 주도 세력은 ‘촛불 혁명’의 계승자가 아닌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수년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조국 일가’ 비리,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옵티머스·라임 펀드 정·관계 연루 의혹…. 문재인 정권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검찰총장 쫓아내기, 비리수사 검사 내쫓기…. 그래도 수사를 막지 못하니 아예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겠다고 한다. 그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외친다.

정권비리 수사를 틀어막아 “우리는 깨끗하다”고 소리치고 싶은 건가. 그런 개혁 두 번 했다가는 온 나라가 ‘부패판’으로 변할 성싶다.

‘돈 살포’ 포퓰리즘은 또 어떤까. 4차 재난지원금 20조원, 가덕도 신공항 건설비용 28조원….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하루아침에 수십조원씩 뿌리는 결정을 한다. 빚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3월 지급’을 독촉하는 대통령. 빚은 누가 감당하나. 청년들과 어린 세대가 갚아야 한다. 40∼50년 후에는 법인세를 모두 쏟아부어도 나랏빚 이자조차 갚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의 아들딸들에게는 희망이 사라진다. 왜? 부모 세대가 그들의 호주머니 돈을 털어갔으니.

공직자의 땅 투기, 정권비리 수사를 막는 ‘가짜 개혁’ 구호, 포퓰리즘 ‘돈 잔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국민을 속이는 표리부동, 서로 간다 하고 동으로 가는 정치다. 그 중심에는 이(利)를 좇는 ‘무자격’ 정치인과 공직자가 있다. 믿음은 산산조각 나고 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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