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서울이라는 발굽

남상훈 2021. 3. 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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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고향에 내려갑니다.

고향 동네 가면 어릴 적 내가 살던 길고 커다랗던 골목길은 왜 그리 작고 짧아졌는지.

고향엔 살갑던 혈족들도 다 돌아가셔서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서울이 고향인 양 이곳에 발굽을 굳게 박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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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근
고향에 가면
피에 겨운 어린 내가 있고
고향에 갔다 오면
나는 백 년 늙는다네
어째서 골목은
작아지는 일에만 몰두했는가
고향에 갔네
고향은 다 끝난 자세로
죽은 혈족들처럼 무뚝뚝하고
무엇이 지나갔는가
사나운 사내가 어깨를 치고 가는 거리에서
무슨 간판을 두리번거리는
나는 아무리 가도 때늦은 사람
부르는 목소리 하나 없이
바삐 바삐 올라오는
나는 서울이라는 발굽을 가진 사람
가지 않고 올라오기만 하는 사람
영 글러먹은 사람
나는 어쩌다 고향에 내려갑니다.

고향 동네 가면 어릴 적 내가 살던 길고 커다랗던 골목길은 왜 그리 작고 짧아졌는지.

어마어마하게 컸던 초등학교 운동장도 왜 그리 작아졌는지.

떡볶이를 팔던 가게도 눈깔사탕을 팔던 가게도 공책과 연필, 크레용을 사던 문방구도

다 사라지고 낯선 간판들만 즐비합니다.

고향엔 살갑던 혈족들도 다 돌아가셔서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낯선 사내만이 어깨를 치고 가는 고향 거리에서

망연히 서 있다가 바쁘게 서울로 올라오곤 합니다.

고향에 가면 유년의 추억이 가득한 내가 있고 서울로 오면

팍팍하게 늙은 내가 있는데도 바삐 올라오는 나는

이제 서울이 고향인 양 이곳에 발굽을 굳게 박은 사람입니다.

유년의 고향을 가지 않고 그리워만 하면서,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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