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년, 유격수 오지환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이용균 기자 2021. 3. 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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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지환(31·LG)을 처음 본 건 2009년 가을이었다. LG는 경남 진주에 마무리 캠프를 차렸다. LG가 매년 찾던 연암공과대학교 야구장의 흙바닥에서 오지환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굴려주는 공을 받았고, 펑고 배트로 때린 강한 타구를 또 받았다. 고졸 신인으로 첫 시즌이 막 끝난 뒤였다. 오지환을 집중 관리한 염경엽 당시 LG 수비코치는 “머지않아 리그 최고 유격수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 장담이 현실로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지환은 2년차였던 2010년부터 LG 주전 유격수가 됐다. 주변의 기대가 컸고, 성장이 더디게 느껴지면서 그만큼 비난도 컸다. 비난과 그에 따른 상처를 꾹 눌러 안아 참는 시간도 길었다.

2010년 시범경기 때 오지환은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조성환의 타구를 처리하다 불규칙 바운드된 공에 이마를 맞아 다쳤다. “아프다기보다 창피했다”고 말했다. 호수비와 실책이 모두 오지환에게서 자주 나왔다. 별명은 어느새 ‘오지배’가 됐다. 좋은 뜻보다 나쁜 뜻일 때가 더 많았다.

2011년 9월1일 SK전에서 오지환은 연장 11회말 1사 1·2루에서 박재상의 타구를 처리하다 실책을 저질렀다. 중계화면에 깨져서 피가 흐르는 오지환의 손톱이 잡혔다. 피가 흐르는데도 오지환은 계속해서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결국 LG는 박진만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졌다. 전반기 2위여서 기대했던 가을야구가 또 멀어졌다. LG 류지현 감독은 “정말 고생이 많았던 유격수”라고 그때를 떠올렸다.

오지환은 이제 리그 톱을 다투는 유격수가 됐다. 박용택 KBS N 해설위원은 “유격수 수비는 누가 뭐라 해도 무조건 오지환이 톱”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조성환 한화 수비코치는 지난겨울 열린 ‘우리야구 컨벤션’에서 “오지환이 송구 때 투 스텝을 하기 시작했다. 수비가 확 늘었다”고 말했다.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았을 때 공부와 일이 그렇듯 야구도 성장한다.

LG 이천 스프링캠프 때 오지환을 만났다. 유격수 수비 때 첫 발을 떼는 풋워크 변화에 대해 묻자 “옛날에는 공을 따라갔고, 그다음에는 부딪으러 갔다”고 말했다. 마음만 앞서 서툴 때의 일이다. 공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 따라가는 시절이 있고, 야구를 조금 알아 공이 보이면 무조건 달려드는 때가 생긴다. 따라가 잡으면 늦고, 서둘러 부딪으러 가면 놓치는 일이 많아진다. 타자, 주자와 싸워야 하는데 공과 싸우느라 실책이 늘어난다.

12년차 주전 유격수 오지환은 “지금은 공을 만나러 간다. 내야 수비는 공과 만나는 점을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지환은 이를 위해 풋워크를 세밀하게 다듬었다. 좌우 직선 방향으로 바로 뛰어 나가기보다는 첫 발을 공이 움직이는 방향의 조금 뒤쪽으로 살짝 뗀 다음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공의 움직임을 좇는다. 오지환은 손으로 풋워크의 방향을 설명했다. 유격수 좌우 방향으로 하트 모양이 그려졌다.

오지환은 “타구를 판단하면, 어디쯤에서 만나야 할지 이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단계”라고 말했다. 세월과 경험만큼의 여유가 생겼고, 달려가 부딪는 대신 살짝 뒤로 뺐다가 돌아 들어가며 공과 만난다. 만나는 공은 실수가 적다. 12년 전 진주의 흙바닥에서 구르던 까까머리 신인이 이제 진짜 유격수가 됐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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