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반복돼선 안돼".. 피난로 확보·구조시스템 정비 [동일본대지진 10년]

김청중 2021. 3. 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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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그래도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쓰나미에 가족과 죽음의 이별
보트 구조시스템 등 사업화 나서
청소년·관광객에 재해 교육도
2019년 3월엔 전시관 문 열어
"재해 통해 주변 소중함 깨달아"
지난 2011년 4월 6일 일본 동북부 이와테현 가메이시의 쓰나미 피해 해안가 유적 앞에서 한 여성이 사위의 명복을 빌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0년간 하루하루를 그날(2011년 3월11일)이 계속되며 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일본 이와테(岩手)현 가마이시(釜石)시 우노스마이초(町) 바닷가에서 여관 호라이칸(寶來館)을 운영하는 여주인 이와사키 아키코(64)씨는 2011년 3월11일 규모 9의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렸다. 바다 위에 옆으로 누워버린 버스 타이어를 잡고서야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10년 전 대자연의 가공할 위력 앞에 많은 사람의 생사가 엇갈렸다. 지난 3∼5일 만난 ‘살아 남겨진 자들’은 대재해가 할퀴고 간 상흔이 여전하지만 미래를 위해 새로운 희망을 일구고 있었다.

“쓰나미에 삼켜 버렸을 때를 생각하면 새로운 삶을 받은 기분”이라는 이와사키씨도 공동체를 위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여관이 있는 해변 이름을 따 2016년 설립된 네하마(根濱)마인드(Mind)의 대표이사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초대형 쓰나미 경험을 통해 수난 시 활용할 수 있는 보트 구조 시스템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 사업은 피난로 정비다. 재해 당시 호라이칸의 직원과 숙박객은 모두 뒷산으로 피난할 수 있었으나 휠체어는 이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진 후 주민, 자원봉사자와 휠체어로도 대피할 수 있는 피난로 정비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의 재해가 할퀴고 간 상흔이 여전히 남은 가운데에서도 미래를 위해 새로운 희망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은 호라이칸 이와사키 아키코씨. 가마이시(일본 이와테현)=김청중 특파원
오라가(우리동네)오쓰치광장 이와마 게이코씨. 오쓰치초(일본 이와테현)=김청중 특파원
이와테현 가미헤이(上閉伊)군 오쓰치초(大槌町)의 이와마 게이코(58)씨는 쓰나미가 인근 친정을 덮쳐 당시 77세 아버지가 실종됐다. 기름 유출로 물 위에 화재가 발생한 불바다의 생지옥 속에서 찾아헤맸으나 진흙더미가 된 집터, 피난소, 유해안치소 어디에서도 부친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와마씨는 “쓰나미가 오기 직전 남편이 모시러 갔는데 아버지는 ‘이제까지 쓰나미가 산 밑에 있는 집 근처까지 온 적은 없다. 불단을 2층으로 옮기고 어머니만 잠시 데리고 가라’고 한 것이 운명을 갈랐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몇 살이시지…”라고 나이를 세어 보곤 한다는 이와마씨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이와마씨는 재해 8개월 후인 11월 가설 텐트에 부흥식당을 꾸리며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부흥식당은 처음에는 재해복구 지원을 나온 자원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음식 한 그릇 제공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곧 집과 가족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던 주민들의 재회 광장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시민단체 오라가(우리동네)오쓰치광장 소속으로 청소년이나 관광객에게 재해 경험 전수와 교육을 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이와마씨는 “재해 시 순간의 판단에 따라 생사가 뒤바뀐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어떤 행동을 해야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지킬지 머리에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재해 시 가족끼리 만나기 위해 재회 지점을 미리 약속해 두라는 조언도 한다”고 말했다.
가마이시의 목숨을잇는미래관 기쿠치 노도카(25)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쓰나미가 덮쳐서 완전히 검은 바다로 변한 천지와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날 때 들리는 굉음이 떠오른다”며 “하지만 실제 헬리콥터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기쿠치씨는 대지진 발생 후 대쓰나미 경보를 뒤로하고 학교 친구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44분 동안 해발 2m에서 해발 44m 고지로 9㎞를 도망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기쿠치씨는 “당시에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얼떨떨했다”며 “슬픔이나 충격조차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쿠치씨 가족은 무사했지만 주위에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고교 진학 후 지진 관련 얘기를 삼가게 됐다.
가마이시의 목숨을잇는미래관 기쿠치 노도카씨. 가마이시(일본 이와테현)=김청중 특파원
기쿠치씨는 대학 졸업 후 2019년 4월부터 미래관에서 재해 경험을 전하며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2019년 3월 문을 연 미래관은 재해 때 발생한 사건과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 당시 자료를 전시하고 경험을 전파하는 재해교육의 현장이다.
기쿠치씨는 “재해를 통해 내 목숨이나 주위의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 있음을 느끼게 됐고 은혜를 갚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다음 세대에 도움을 주도록 살아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의 주식회사 후타바 엔도 슈분 사장. 본인 제공
후쿠시마현의 주식회사 후타바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환경과 지리 공간 정보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회사다. 엔도 슈분(49) 사장은 지진 발생 직후 가족과 대피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인근 후타바(雙葉)군 도미오카마치(富岡町)에 있던 본사도 60㎞ 떨어진 고리야마(郡山)시로 옮겼다. 그러다 2017년 8월 본사 복귀라는 결단을 내렸다. 도미오카마치의 주민 복귀율은 지금도 12.7%에 불과할 정도로 그의 결단은 남달랐다. 2016년부터는 100년 앞을 내다보고 포도 재배와 와인을 통해 지역 부흥을 이끌겠다는 도미오카 와인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엔도 사장은 “와인 프로젝트와 본사 귀환을 통해 지역에 공헌하고 싶다”며 “환경 개선을 통한 지역 만들기로 후쿠시마의 경험을 세계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이와테·후쿠시마=글·사진 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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