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핵 해법, '비핵지대화'는 어떤가

2021. 3. 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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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때의 '전략적 인내'를 답습할 것인지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인 대북 협상을 원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조야에서도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표방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이 대선 후보 때 밝힌 대북정책 방향은 전략적 인내와 흡사하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의 전망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데에 있다. 분명한 미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그리고 내용적으로 전략적 인내로 회귀할수록 북한의 핵 능력은 강해질 것이라는 데에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이 강해질수록 한반도 비핵화도 요원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원하는 미래가 아니라면 '새로운 시작'을 도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그리고 모든 탄도미사일 및 이중용도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 비핵화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너무 커서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Too big to grasp)'이다. 반면 북한은 자신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위협의 근원적인 해소'도 요구한다. 그런데 미국이 7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요구는 '너무 막연해서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Too vague to grasp)'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동상이몽은 너무나도 크다.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핵문제 해결을 추구하면서도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이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협상은 철저하게 북미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에 반해 유엔은 비핵지대와 관련해 "지대 내 국가들의 자유로운 협상 결과에 기초"하고 "핵보유국을 비롯한 지대 밖의 국가들도 지지·협력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국제법적으로 한반도 비핵지대의 당사자들은 바로 남북한이다. 이에 따라 남북한이 비핵지대를 논의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5대 핵보유국들과 국제사회도 한반도 비핵지대를 적극 권장하고 지지·협력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의정서 체결 후보국들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대북 제재의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에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면서도 핵문제 해결이 막히면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다른 문제들의 해결을 가능하게 한다. 한반도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군비 통제, 대북 제재 해결 등이 '동시적·병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비핵화의 정의 및 목표 자체에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이들 문제의 진전도 가로막혀 있다.

이에 반해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으면 이들 문제의 진전도 가능해질 수 있다. 비핵지대 프로세스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들 사이의 선순환적인 조합을 만드는 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가령 비핵지대 중심으로 '포괄적인' 합의에 도달하고 북한의 핵물질 생산 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완화를 비롯한 일부 상응조치를 맞교환하는 것을 '1단계' 이행조치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할 수는 있다. 우선 미국이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핵전략에 차질을 야기할 수 있는 비핵지대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핵지대는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규범이 되어왔고 미국도 이에 동의했다. 또한 비핵지대 방식은 30년 동안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에, 바이든 행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동의할지도 불확실하다. 조약 방식으로 미국의 대북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핵지대는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를 법적 구속력을 갖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방식보다는 우월하다. 또한 비핵지대는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와도 흡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핵지대는 김정은 정권에 실질적인 '최대의 압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김정은에게 '명예로운 선택'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 창설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유훈을 실현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 협상, 특히 적대국들 사이의 협상에서 어느 일방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패전국을 상대로도 달성하기 힘들다. 그래서 협상 당사자들이 만족과 불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협상안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한반도 핵문제를 비핵지대 방식으로 풀자는 제안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아직 낯선 제안이다.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아직 공식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국내외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외교가에서 먼저 공론화를 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과 소통이 가능한 국가들은 이 아이디어를 북한에 전달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도 한미 양국이 비핵지대 방식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협의하고 유용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북한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로 불린다. 비핵화 자체를 둘러싼 동상이몽이 너무나도 크고 이에 따라 제재 해결 등 상응조치들과 선순환적인 로드맵을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여 국제사회에선 이미 익숙한, 그러나 한반도 핵문제 해법으론 낯선 비핵지대를 주목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선 비핵지대가 하나의 '노멀(normal)'이다. 한반도 핵문제 해법으로는 '새로운(new)'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문제 해법의 '뉴 노멀'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원문=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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