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더 나은 사회를 방해하는 이의 억지 / 김우재

한겨레 2021. 3. 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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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ㅣ 낯선 과학자

사회학자 전상진에 따르면, 음모론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고의 원인을 ‘권력 유지나 획득을 목적으로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집합행동’인 음모에서 ‘찾고 탐구하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음모론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한 사회학자 호프스태터는, 음모론자를 ‘증오에 휩싸인 편집병자’라고 불렀다. 음모론자는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의심하며, 자신의 망상적 세계관을 무너뜨릴 합리적 증거가 밝혀져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끊임없이 분노한다. 하지만 전상진은 그의 책 <음모론의 시대>에서 역설적으로 음모론의 쓸모를 강변했다. 왜냐하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우리 모두는, 음모론이 저항의 불쏘시개로 쓰일 수 있으며, 또한 저항을 분쇄하는 조치를 정당화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상진은 음모론이라는 사회현상을 개인들의 비정상적인 성향으로 낙인찍는 것에 반대한다. 첫째, 음모론의 ‘낙인’이 ‘합리적인 의심’이나 적절한 비판을 억압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권력은 자신에 대한 모든 종류의 의혹을 음모론의 낙인으로 폐기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에는 민주적 기제가 담겨 있다. 둘째, 음모론처럼 취약한 정치이론을 믿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요인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드러난 현대사회의 모순들 속에는, 음모론이 창궐할 수밖에 없는 권력구조의 허술함이 분명히 놓여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프랑스 마크롱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된 목수정의 음모론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목수정 개인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넘어 인류 전체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목수정에 대한 나의 비판은, 목수정 개인이 아니라 대중에 널리 알려진 지식인으로서 그의 발언이 가져올 사회적 피해와 얽혀 있다. 목수정의 발언은 위험하다. 첫째, 그가 한국의 뉴스에 잘 소개되지 않는 프랑스와 유럽의 뉴스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한국의 언론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나 국제뉴스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은 목수정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 넘기고 있다. 둘째, 목수정이 자신의 음모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 근거 없는 호도나 선동이 아니라, 나름의 근거를 통해 유사합리성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전상진이 주장했듯이, 음모론은 비합리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과잉합리성’에 시달린다. 음모론자는 ‘극단적 합리주의’를 추구하며 그의 음모론 내부에 그 어떤 우연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우연의 자리에 누군가의 의도와 개입을 가정한다.

지난 2월17일, 목수정은 의학전문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을 거론하며 ‘과학의 이름으로 벌인 범죄인가, 코로나 치료제 퇴출 내막’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그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HCQ)에 분명히 효능이 있음에도 지난해 5월 이 약이 코로나19에 무용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밝힌 <랜싯>지의 논문 때문에 유럽에서 이 효과적인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의 수많은 전문가들의 이름과 인터뷰를 거론하고, <뉴잉글랜드의학저널>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이 글만 읽으면, 우리는 코로나19 치료제를 이미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백신회사의 이익을 위해 치료제의 효능을 부정하고 있는 빌 게이츠와 글로벌 제약회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글은 완벽한 거짓이다.

목수정이 소개한 <뉴잉글랜드의학저널>의 논문은 연구논문이 아니라 일종의 서신 교환으로, 175개의 단어로 길이가 제한되는 연구자 간의 토론을 위한 지면이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 연구자들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능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논문에 반박문을 실은 건 사실이며, 그 내용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서신교환 밑에는, 그들이 비판한 원래 논문의 저자들이 쓴 반박문도 함께 올라와 있다. 이 반박문의 저자들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으로 수행한 실험이 비판자들의 말처럼 과용량의 투약으로 문제 될 소지가 전혀 없으며, 그 용량 때문에 사망했다는 증거조차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목수정이 마치 해당 용량을 투약한 그룹에서만 환자 421명이 죽은 것처럼 표현한 부분은 완벽한 사기에 가깝다. 왜냐하면 임상시험기간 동안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투약하지 않은 그룹에서는 790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목수정은 의학논문을 읽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그가 코로나19 치료제라고 주장하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의학계에서 퇴출된 이유는, 실제로 임상에서 그 약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목수정이 언급한 논문은 과학자 사회에서는 매우 상식적인 합리적 토론의 과정일 뿐,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능을 뒤집을 만한 연구결과가 아니다. 3월2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사용 중지를 권고하고, 6천여명이 참여한 6개의 실험결과에 따른 권고 조치임을 설명했다. 미국 정치를 타락시킨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신의 선물’이라며 극찬했고, 일부 트럼프 지지자는 수조 첨가제인 클로로퀸 인산염을 먹고 사망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트럼프의 극단에 있는 목수정이 꺼내 든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음모론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수십명도 안 되는 한국의 과학기술인들과 함께 그 어떤 재정적 지원도 없이 더사실포럼이라는 싱크탱크를 운영해 왔다. 우리는 ‘우한폐렴’이라는 용어의 부당함을 가장 먼저 한국에 알렸고, 코로나19의 최신 소식을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정확한 뉴스가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는 글들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가 생계와 관련 없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면서까지 매달리는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역할 중 하나가 우리의 상식을 지탱하는 발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직업군은 과학기술인뿐이다. 며칠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국민 불안과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코로나19와 백신 관련 가짜뉴스를 유포한 혐의자 279명을 검거했다. 더사실포럼이 할 수 있는 일과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다르다. 정부가 과학이라는 상식을 수호하는 권력기관이 되어주길 바란다.

* 위 글은 <한겨레: 왜냐면>에 실린 목수정 작가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왜냐면] 세상일을 자세히 알려 할 때 그걸 방해하는 이의 논리

목수정 | 작가

김우재라는 필자가 ‘목수정의 반계몽주의’란 글(<한겨레> 3월2일치)에서 나에 대해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고 썼다.

그 글을 보고, 음모론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음모론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러운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 반면 미국의 언어학자 촘스키는 “음모론이란 이제 지적인 욕설이 되었다. 누군가 세상의 일을 좀 자세히 알려고할 때 그걸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들이대는 논리”라고 지적한다.

내가 펼치고 있는 음모론의 예로 그는 “영국 백신 접종 사후관리 시스템에 영국의 백신 부작용 신고가 4만건이 넘는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는 걸 들었다. 나는 “2월7일까지 접수된 44,635개의 백신 부작용 리포트 속에는 144,197건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어 있으며, 그 중 사망자는 323명이다. 옐로카드 제도는 백신 접종 이후 발생한 부작용을 자발적으로 보고하는 시스템으로, 의무적인 것이 아니므로, 실제 부작용 발생수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고 썼다. 영국 정부는 신고된 사례들의 백신관련성이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이 자발적인 신고이므로, 실제 사례보다 축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말하지 않았다. 하버드 의대팀 연구에 따르면, 비슷한 시스템을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 자발적 신고에 의해 접수되는 백신부작용은 실제 발생건수의 1%에 미치지 못한다. 즉 정부측 확인에 의해 실제 사례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현실에선 100배쯤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두 사실을 감안하여, 실제 발생수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던 것이다.

프랑스에 거주하며 주로 프랑스 소식을 전해온 내가 영국 얘기를 쓰게 된 것은 정세균 총리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안전하다”는 공언이 계기였다. 거의 모든 한국언론을 통해 전해진 이 말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난 프랑스 언론을 통해 영국의 백신 부작용 소식을 듣고 있었건만, 당시, 한국의 어떤 언론도 이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영국은 1월초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맞게될 백신에 대한 부작용 사례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2월14일까지 영국정부에 접수된 부작용 리포트는 58,250건이고 부작용 사례는 191,832건이다. 그중 아스트라제네카가 114,625건이며 이중 사망자는 402명(AZ는 205명)이다. 프랑스에선 병원 직원들 중심으로 2월 중순부터 지극히 적은 숫자가 AZ백신을 접종받았고, 접종한 직원들 중 25%가 병가를 내야할 정도로 부작용이 커서, 일부 병원에선 백신 접종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이 안전하다는 말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늦은 백신 수급으로 비판 받았지만, 더 큰 잘못은 수급이 늦어지는 동안 문제를 파악할 충분한 정보와 시간이 있었음에도 국민들에게 전하지 않은 점이다.

프랑스의 백신전략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의사 알랭 피셰는 지난해 12월,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접종하게 될 화이자백신에 대해 이런 견해를 밝혔다. 1) 전해진 바에 따르면 백신의 효능은 2-3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2) 가장 허약한 인구층, 즉 노령층과 기저질환자들에게 이 백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3)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안 걸리는지, 전염시키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보장이 없다. 그의 견해는 분명, 프랑스인들의 백신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세균 총리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이 한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과 마찬가지로.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방식으로 방역정책을 진행해왔고, 해당 분야의 전문의들은 정부의 방역정책을 맹렬히 비판해왔다. 일부 의사들은 정부 편에 섰지만, 그들은 대부분 제약회사들과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자들임이 밝혀졌다. 그 논쟁 속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수십권의 책으로, 8편의 다큐멘터리로, 공개 토론으로 세상에 전해졌다. 지난 1월에는 의료인 6만명이 독립과학위원회를 결성, 백신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여 국민에게 전하며, 가급적 백신을 맞지 않을 것과, 효과적이고 위험이 적은 치료약이 얼마든지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10여년 전부터 나는 프랑스 소식을 한국에 전하는 것을 업의 일부로 삼아왔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으며, 거기 맞서 싸우는 시민들의 투쟁과 그 성과를 조명하며 우리가 나눠가지면 좋을 정보를 전하려 애써왔다. 프랑스에서 노란조끼 투쟁이 벌어질 때,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설 때, 프랑스 정부는 비난하지만, 거기에 맞서 싸우는 민중들은 응원하는 입장에서 글을 썼다. 코로나19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방역정책, 의료정책은 비난하지만, 거기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들을 응원하며 우리에게 없는 정보를 전해왔다. 김우재가 묘사하듯, 내가 본 프랑스가 이상적 사회였다면 허구헌 날 투쟁이 일어나지도, 그런 소식을 전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백신접종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언론은 일제히 심각한 부작용없이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 기사들 밑에 달린 댓글들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부작용에 대한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현실이 혹시 당신의 눈엔 계몽주의? 계몽주의는 불어로 Les Lumières 다. <빛>이란 의미다. 모든 종류의 의문과 호기심을 거부하는 절대권력의 시대를 지나, 질문하고, 의심하고, 모험하며, 더 넓은 지혜와 지식으로 나아가는 시대, 어둠을 떨치고 빛을 향해 나가는 것이 계몽주의다. 자명한 현실들을 덮고, 다짜고짜 <안전한 백신>을 선언하는 것, 자신이 접한 정보를 세상과 나눈 이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은 계몽주의와 먼 얘기다. 김우재는 촘스키가 말한 “세상의 일을 좀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걸 방해하는 사람”의 역할을 <음모론>이란 손쉬운 무기를 들고 하고 계신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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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반계몽주의

김우재 | 낯선 과학자

프랑스는 위대한 나라였다. 18세기 그곳에선 계몽의 사상이 불타올랐다. 가톨릭교회와 왕권의 전횡에 저항하기 위해 계몽사상가들은 살롱에서 치열하게 토론했고, 그들의 급진적 사상을 익명으로 출판하며 싸웠다. 계몽사상가들 중 볼테르와 루소는,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사망한 위인들만 안장되는 프랑스의 팡테옹에 예외적으로 안장되었다. 계몽사상이 프랑스대혁명의 이론적 근거와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은 왕정을 종결시켰고, 근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를 태동시켰다. 우리가 향유하는 근대민주주의는 프랑스와 그들의 계몽사상에 빚지고 있다.

프랑스 계몽사상의 뿌리는 영국이다. 볼테르는 뉴턴이 완성한 근대과학의 방법론적 틀에서 계몽사상의 강력한 근거를 발견했다. 볼테르는 물리학에 관한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 속에서 프랑스의 사회적 진보를 꿈꾸었다. 백과전서파로만 짧게 알려진 디드로와 돌바크는 뉴턴의 기계론에서 벗어나, 당시 프랑스에서 막 피어나던 근대화학으로부터 전투적 유물론과 급진적 무신론의 근거를 찾았다. 물리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생명의 발생과 물질의 변화를 근대화학의 방법론과 발견들로 설명하면서 그들은 엄청난 분량의 백과전서를 저술해나갔다. 프랑스 계몽사상의 철학적 기틀은 근대과학으로부터 왔다.

프랑스의 정치사상을 한국에 널리 알린 인물은 홍세화다. 그는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자 프랑스 망명을 신청했고, 20년간 파리에서 택시운전사로 살았다. 이후 1995년 출판된 그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홍세화는 프랑스에서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수입했다. 한때 한국의 지식생태계는 홍세화가 수입한 똘레랑스에 대한 글과 논문으로 가득했다. 이후 한국 철학계는 프랑스의 현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잠식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의 지성계엔 소칼의 지적 사기로 ‘과학전쟁’이 일어났다. 물리학자이자 합리적 좌파였던 앨런 소칼은, 프랑스 좌파의 포스트모더니즘이 해롭고 독단적인 고등종교라 생각했고, 엉터리 논문을 포스트모더니즘 학술지에 출판한다. 계몽주의 시기, 과학적 세계관과 동조하던 프랑스 철학은 어느 순간 반과학의 상징이 되었다. 홍세화는 프랑스 계몽사상의 핵심인 근대과학을 쏙 빼고 똘레랑스를 수입했다. 볼테르의 계몽사상에서 유래된 똘레랑스는 근대과학적 맥락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목수정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작가다. 그는 스스로를 생활좌파로 규정하는 인물이다. 홍세화가 들여온 프랑스 유행이 시들해가던 무렵, 목수정은 다시 프랑스를 한국에 수입했다. 그에게 프랑스는 가장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민주주의와 문화를 지닌 나라였고, 그의 글은 대부분 프랑스의 삶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프랑스에 대한 그의 찬양은 점차 그림자정부론에 가까운 음모론으로 변질되었다. 코로나19 뒤엔 이 사태를 이용해 세상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려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 세력은 우리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것이 목수정의 생각이다. 그의 생각은 점점 더 위험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며칠 전 목수정은 영국의 백신 접종 사후관리 시스템인 ‘옐로카드’의 문건을 근거로, 영국의 백신 부작용 신고가 4만건이 넘는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 글은 마치 기자가 사실만을 나열한 것처럼 작성되어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목수정은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근거는 빼는 방식으로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계몽사상가로 분류되지만, 사실 루소는 과학과 문명에 대한 비상식적 주장 때문에 반계몽주의자로 불린다. 과학이라는 상식적 세계관에서 멀어진 좌파는 극우보다 위험할 수 있다. 목수정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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