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고용지표에 정치권 압박.. 물가·고용 두 토끼 잡을까 [한은 '고용안정 책무' 학계에 용역]

김성환 2021. 3. 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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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목적 '고용안정' 추가 속도
학계에 용역 맡겨 상반기에 결론
"목표 상충" 방어적 입장서 물러나
"고용안정 역할" vs "통화정책 혼란"
한국은행이 정책운용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데 속도를 낸다.

8일 한은과 금융권, 학계 등에 따르면 한은이 올 초 거시경제 측면에서 '고용안정'을 책무에 추가하는 방안에 대해 학계에 용역을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상반기 결과가 나온다. 용역 수행 대상은 거시경제와 고용노동 분야에 밝은 교수 4명이다.

용역을 맡긴 배경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고용지표가 좀체로 나아지지 않는 데다 최근 정치권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엔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오래된 통설이 깨지면서 한은도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할 만한 환경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야 "한은이 고용 신경쓸 때 됐다"

정치권에선 최근 여야 모두 같은 내용의 한국은행법 일부 개정법률안(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개정안을 들이댔다. 각각 법안을 발의했지만 핵심 목표는 동일하다.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자는 주장이다.

한은 입장에선 개정안이 발의될 때마다 방어적 태도를 취해왔다. 물가를 잡으면서 고용안정을 취하기는 상식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안정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물가안정과 고용안정 목표는 상충되기 때문에 신중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방어해왔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고용이 안정되려면 물가 또한 오르게 된다는 오래된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론이 '필립스 곡선'이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실업률은 낮아진다는 경제이론이다. 한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간의 관계는 대체로 음의 관계를 보이나 상관관계가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것은 여러가지 지표들이 영향을 미치는 만큼 통화지표보다는 여러 고용지표를 고려해 통화정책에 포함하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다만 성장률 추이 속에서 전통적인 고용안정을 반영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결론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외부에서는 찬반 팽팽

찬반 논의는 팽팽하다. 일부 학자들은 우호적이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고용안정을 주요 역할로 포함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우리나라도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 미 연준의 경우 물가가 목표치인 2%를 넘어도 금리를 높이지 않는 평균물가목표제(ATI)를 도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안정이 기본적으로 경기나 성장률과 관련된 것인데 이를 명시적으로 해 고용안정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다만 이를 위한 분명한 지표 설정과 보완적인 제도가 수반될 필요가 있고, 금통위가 물가와 고용 등을 판단할 때 독립성을 갖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실효성이 적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앙은행이 고용안정 역할을 하는 국가들도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사이에서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고 통화정책에 혼란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 한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고용이 부진한 경우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금리를 인하하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 하지만, 최근 과도한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흘러들어가면서 고용안정을 위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가는 데 대해 금융안정 우려가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미·영·호주 '고용안정' 명시 vs EU·일·대만 '명시 X'

해외의 경우 일부 국가에서는 중앙은행법에 고용안정을 명시했다. 우선 미국의 연방준비법을 보면 최대고용, 물가안정, 적정장기이자율 등 3가지 목표가 목적조항으로 실려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연방준비제도는 "최대고용과 물가안정 목표에 상당한 진전이 이뤄질 때까지 매월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호주도 중앙은행법에 통화가치 안정, 완전고용 유지, 경제번영과 복지 등 3가지를 정책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고용안정이라는 문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해외 중앙은행도 여럿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안정을 주목표로 삼고 있다. 하위목표로 유럽연합의 경제정책 지원이 있지만, 영란은행과 달리 고용이 명시돼 있지는 않다. 일본은행과 대만은행 역시 정부 정책과의 조화를 명시했지만 고용을 구체적으로 넣진 않았고, 금융안정과 물가안정만 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ksh@fnnews.com 김성환 연지안 이용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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