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이 파평윤씨잖아" 묻지마 대선테마주, 사흘 상한가

이경은 기자 2021. 3. 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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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달아오른 정치 테마주
/일러스트=김성규

코스피가 3000선 밑으로 미끄러져 2996.11에 마감한 8일 증시는 파평 윤씨 테마주(株)로 종일 들썩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권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파평 윤씨가 오너인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이상 현상을 보였다.

이날 영어 교육 업체인 NE능률은 개장하자마자 바로 상한가로 직행했다. 최대 주주인 윤호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윤 전 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 종친회 소속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사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NE능률 종가는 이날 7510원으로 마감했다. 이달 들어서만 137% 상승했다. NE능률은 이날 “당사의 사업과 윤석열 전 총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공시했지만 투자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날 웅진도 상한가(1780원)에 마감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윤 전 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이유뿐이었다. 계열사인 웅진씽크빅 역시 전날보다 23.4% 오른 3350원에 마감했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파평 윤씨가 80%를 차지하는 윤(尹)씨는 우리 나라 성씨 인원 순위에서 8위일 정도로 흔하다”면서 “같은 파평 윤씨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파평 윤씨 테마로 상한가

증시에서 정치인 테마주, 대선 테마주는 ‘투기의 꽃'이라고 부를 정도로 투자로 보기 어려운 투기로 분류된다. 테마주라고 하지만, 해당 정치인과 실제 어떤 인연이 있나 들여다보면 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합성피혁·합성수지 판매 업체인 덕성은 이달 들어서 주가가 더블이 됐다. 김원일 사외이사가 윤 전 총장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묶이며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날 덕성 주가는 전날보다 24% 오른 1만2200원에 마감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창업한 안랩도 올 들어서만 주가가 21% 올랐다. 안랩의 최대 주주(18.6%)는 안 대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관련된 테마주로 분류되는 오리엔트정공은 작년 말만 해도 800원대에서 움직이던 동전주였지만, 올 1월 중순엔 1875원까지 급등했다. 이 지사가 오리엔트정공 계열사인 오리엔트시계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했고, 2017년 대선 출정식도 이곳에서 진행했다는 소식에 테마주로 묶였다.

◇정치인 테마주는 ‘홀짝 게임'이라는데…

대선 테마주는 증권가에서 ‘홀짝 게임'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먹 쥔 손에 동전이 홀수가 있는지, 짝수가 있는지 맞추는 게임처럼 아무 근거 없이 투자를 한다는 의미다. 근거 없는 기대감이 퍼지고 단타족이 몰리면서 주가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들은 오히려 당황하며 “우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명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특히 올해는 이런 묻지 마 투기 열풍이 더욱 뜨거워진 모습이다. 동학개미 운동 여파로 개인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난 상황인데 최근 코스피가 3000선에서 횡보하면서 수익률을 챙기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투자자 이모씨는 “장기 투자를 하려고 들어간 삼성전자 주가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데, 정치인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테마주가 급등하니 자꾸 눈길이 간다”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0만원어치만 사서 10%만 벌어보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인 테마주는 이른바 ‘작전 세력’의 단골 먹잇감이라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유튜브 증권 방송 등을 통해 엉뚱한 종목을 정치인 테마주로 지목하고, 각종 거짓 정보를 퍼뜨려 테마를 만든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혈연이나 학연 등 어처구니없는 테마로 주가가 급등하는 것을 보니 여전히 국내 증시가 우리나라 정치 문화만큼이나 후진적인 것 같아 씁쓸하다”면서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가가 급락하는 만큼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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