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실패로 집값 올린 정부, 이번엔 'LH 공공 재개발' 고집하나

세종=박정엽 기자 2021. 3. 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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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공공주도 정책, 원점 재검토" 주장하고
與도 LH 힘키울 후속입법 상정 눈치보는데
정부는 "2·4 대책은 일정대로 추진" 선언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으로 국민들로부터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2·4 공급대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도덕성에 상처를 받은 LH 주도로 도심 정비사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현 정부가 ‘공공이 주도하는 공급 방안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는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지방 공기업의 주택공급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 주도’는 사실상 ‘LH 주도’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이에 따라 LH라는 개별 공기업에 잠재한 위험에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이나 실거주의무기간 등의 제약을 풀어 도심 정비사업에 민간 참여가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난해까지는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 집값을 잡을 시기를 놓친데 이어, 두번째 실기(失期)를 피하기 위한 제언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4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투기 의혹과 관련해 경기 시흥시 과림동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정치권과 정비업계 등에서는 직원 땅투기 의혹으로 LH의 신뢰도가 타격을 입으면서 ‘정부 발표대로 2·4 대책을 추진해 나가기는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2·4 대책의 핵심인 LH 주도의 도심 정비사업에 대한 신뢰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민간 사업자가 아니더라도 LH가 나서면 토지주의 재산상 이익이 보장되고, 질 좋은 주택이 공급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한데 사업 추진의 전제 조건이 이번 사태로 무너지게 됐다.

우선, 신도지 후보지에서 사업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 시흥시 과림동 신도시 대책위원회는 지난 5일 발족설명회를 갖고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등으로 이곳 신도시 개발계획의 정당성이 훼손됐다"라며 "공공주택지구 지정 예정을 철회하고, 민간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올라온 ‘제3기 신도시 철회 바랍니다’라는 게시물은 8일 오후 5시 20분 현재 3만2600명의 동의를 받고 있다. 이 청원은 "LH 주도의 제3기 신도시 지정 철회해 주세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야 하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LH 등이 공동 시행자로 나서는 8·4 대책의 ‘공공 개개발’ 사업 예상 후보군에서도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측과의 논쟁이 커지고 있다. 이밖에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광명·시흥 지구 투기와 관련해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지적과 함께 향후 개발 예정지에 대해 농지 투기여부도 조사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LH는 웬만한 재개발·재건축은 물론 역세권 공공개발 등의 2·4 대책상 대부분 사업의 주체"라면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직원 땅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신뢰를 잃어 정책 방향이 크게 혼선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자칫하다가는 전체 주택공급 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제도적으로 다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LH가 공공 재개발 단독 사업 시행자로 나설 수 있는 법 개정 작업에도 차질이 생기게 됐다. 여권에서는 2·4 대책 후속 입법을 서두르겠다고 하지만, 법 개정을 담당하는 국토교통위원회 상임위 법안 상정 일정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3월중 국회 본회의 처리를 마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국토위에 상정해 소위원회 논의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LH 투기 사건에 성난 여론을 감안하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LH 권한을 확대하는 법 개정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부정부패가 일어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LH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2·4 대책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무모한 고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83만호를 공급하는 2·4 대책을 포함한 주택공급대책은 반드시 일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LH 중심의 공급정책에 후퇴는 없다’는 선언이다.

그러면서 LH의 권한을 지금보다 키우는 내용의 2·4 대책 후속조치 법안을 정부 계획대로 국회에서 3월내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3월중 2·4 대책의 후보지 및 8·4 대책에 따른 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 공개 ▲4월중 2차 신규 공공택지 입지 발표 ▲7월중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시작, 2·4 대책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 발표 등의 일정을 계획대로 끌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LH 주도의 공공 재개발로 요약되는 2·4 대책을 무리하게 끌고 가는 것은 서울지역 주택난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야당에서는 정부가 고집하다 ‘주택 공급’이라는 정책 목표 자체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는 ‘공공만능’이라는 바이러스는 그대로 놔둔 채 배를 출발시키고 구멍은 가면서 고치겠다는 것"이라면서 "이대로 가면 ‘서민주거안정, 주택 200만호’라는 배는 침몰하게 되는데, 그걸 알고도 출범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2·4대책을 고수하겠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 ‘투기 수요 차단’만 고집했던 현 정부 초기 부동산 정책을 떠올리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3년 넘게 국토교통부 등 정부 부처에서는 ‘공급은 충분하다’면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 공급확대 요구를 거부했다. ‘투기 수요만 잡으면 된다’는 정부의 고집이 유지되는 동안,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중위 가격은 2017년 12월 6억2583만원에서 2020년 12월 8억6223만원으로 37.8%가 뛰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 아파트 가격은 결국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주무 장관의 생각도 바뀌게 했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7월까지만해도 "올해 서울에서만 아파트 5만3000채가 입주하고 앞으로 3년 동안 평균 4만6000채가량이 입주한다. 이는 최근 10년 평균보다 많은 수준이어서 공급은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아파트 공급이 2021년과 2022년에 일시적으로 줄어든다"면서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지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공급부족론을 뒤늦게 인정했지만, 그동안 집값은 오를대로 올라버렸다.

2·4대책에 대한 정부의 ‘아집’이 반복될 경우, 부동산 시장이 다시 한 번 요동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에서는 공공이 주도하는 도심 정비사업 구상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와 관련 "공공주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성찰 부족이 이번 사태를 야기한 것"이라며 "정부 만능주의, 공공 만능주의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난 만큼 공공주도 개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주도 개발은 허점투성이"라며 "객관성과 공정성에 구멍이 뚫려 투기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이번 사태로 그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고 했다.

정부가 LH 등 공기업 중심의 도심 정비사업 구상을 강행할 경우 이들 공기업 소속 직원들이 이미 확보한 이권을 감싸는 듯한 모습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 정책 자체가 바닥부터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현아 비상대책위원은 "토지수용 현장은 (국가가) 수많은 소규모 토지소유자를 수탈하는 현장"이라면서 "그렇게 빼앗은 땅으로 장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직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을 묵인하는데 가만히 있을 토지수용자가 있겠나"라고 했다. 그는 "3기 신도시뿐 아니라 주택 200만호 공급방안은 구멍 뚫린 배"라면서 "공공주도의 공공주택 확대정책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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