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쇳대의 세계 / 이안

한겨레 2021. 3. 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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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쇳대 좀 갖다 다구." 어머니가 문간을 나서며 신혼의 아내를 부른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쇠로 만든 '국자'를 들어 보이며 "어머니, 이거요?" 묻는다.

얼른 쇳대를 찾아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서울 북아현동에서 나고 자란 아내로서는 충북 제천의 시어머니가 갖다 달라는 쇳대를 도저히 들려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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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이안 ㅣ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아가, 쇳대 좀 갖다 다구.” 어머니가 문간을 나서며 신혼의 아내를 부른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쇠로 만든 ‘국자’를 들어 보이며 “어머니, 이거요?” 묻는다. “아니, 그거 말고 쇳대라니까, 쇳대.” 이번엔 곁에 있던 ‘주걱’을 들어 보인다. 아내만 아니라 어머니도 당황해하는 눈치다. 나는 그제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챘다. 저러다간 다음번엔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들게 생겼다. 얼른 쇳대를 찾아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서울 북아현동에서 나고 자란 아내로서는 충북 제천의 시어머니가 갖다 달라는 쇳대를 도저히 들려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부엌일을 하다가 가끔 국자를 들어 보이며 아내에게 묻는다. “어머니, 이거요?”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렇게 이따금 우리 곁에 다녀가신다.

쇳대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말이다. 대신 ‘우리말 샘’에는 “쇳-대 「명사」 「방언」 ‘열쇠’의 방언(강원, 경기, 경상, 전라, 충남, 함경)”으로 소개돼 있다. 사용 권역이 무척 넓은 말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엔 없다. 표준어 사정 원칙인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게 모욕과 수치, 열등감을 안긴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갓 마주한 국어 교과서 문장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 형, 안녕하셔요? 이런 표준어로 적힌 교과서가 여덟살 어린이로 하여금 어머이, 아부지, 슨상님, 성, 안녕하세유? 같은 고향 말을 그만 버려야 할 것으로 각인시켰다. 표준어 앞에서 어머이와 아부지, 이웃 사람들이 쓰는 말과 그 말을 쓰며 살아가는 생활 세계 전반이 재를 뒤집어쓰고 순식간에 추레해졌다. 벽지 들뜬 자리처럼 말과 세계 사이에 덜렁, 틈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교육의 출발이 자기 세계의 존중이 아니라 부정과 외면을 가르치는 것이라니. 상처 입은 어린 영혼은 이렇게 일찌감치 모어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초등학교 입학 초기에 경험한 상처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다. 이오덕은 어린이에게 시를 가르칠 때 필요한 세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제재를 확장할 것과 산문시로 쓰게 할 것, 또 하나가 사투리로 쓰게 할 것이었다. ‘사투리로 쓰게 할 것’ 앞에서 나는 조금 울먹했다. 아득한 옛날의 어린 상처를 뒤늦게나마 보듬고 어루만져주는 손길을 만나서였다. 나의 상처는 교과서의 표준어가 폭력적으로 강제한 “자기를 외면하는 태도”(이오덕)에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시인들에게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더구나 그것을 희화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말과 인간 삶이 강하게 결속된 하나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해낼 때. 멀게는 평안북도 정주 사람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이나 경북 경주 사람 박목월의 시 ‘이별가’가 그렇고, 가까이는 충북 옥천 사람 송진권의 시 세계가 그러하다.

“보리 빈다구 해 놓구 왜 저기는 깎다 만 머리겉이 놔둔 겨 뒀다 씨갑시 할라구 놔둔 겨 아님 덜 익어서 더 여물으라고 놔둔 겨 옷 속에 보리 꺼끄래기 든 거겉이 사람이 당최 되다 만 것이라 아심찮아 나와 봤더니 기어이 일 추는구먼그려 싸기 가서 싹 매조지하구 올 것이지 뭘 그렇게 해찰하구 섰는 겨 똥 누구 밑 덜 닦은 사람겉이// 그게 아니구유 아줌니 저기다 종다리가 새끼를 깠다니께 그려요 종다리 새끼 털 돋아 날아가믄 그때 와서 벼두 안 늦으니께 그때까정 지달리지유”(송진권, ‘노이히 삼촌을 생각함 1’ 전문)

말이 사라지는 것은 그 말로 말미암은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쇳대도 없이 어머니도 없이 봄이 온다. 김태오의 ‘봄맞이 가자’를 충북 제천 말로 불러 본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보금치 옆에 끼고서/ 달롱 나새이 씀바구 나물 캐 오자/ 종달이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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