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감성 넘치는..천문학자의 '딴생각'

서정원 2021. 3. 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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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화제
심채경 천문硏 선임연구원
출간한 지 보름만에 1만부
감각적 문장에 독자들 호평
'다음 50년 달탐사 이끌 과학자'
네이처 젊은 천문학자로 뽑혀
지난 5일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심채경 선임연구원이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특히 여름철 지루한 장마 끝의 노을을 사랑한다. 마치 솜사탕을 여기저기 헤쳐놓은 듯 색깔도 높이도 서로 다른 구름층이 여러 갈래로 휘몰아치다 갑자기 멈춘 듯한 하늘. 그 역동적인 하늘에 내려앉는 노을은 어찌나 붉고 또 어찌나 강렬한 황금색인지."(158쪽)

'이렇게 예쁜 글을 쓸 수 있는 이학자(理學者)가 또 있을까.'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39)의 에세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문학동네)를 읽고 나서 든 감상이었다. 지난 5일 '작가 심채경'을 인터뷰하고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하늘은 불공평했다. 그는 문리(文理)를 겸비한 재원이었다.

심 작가는 "제가 이과 갈 줄 저도 몰랐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글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참 좋아했어요. 활자 중독이었죠. 이과생이 돼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더군요. 이 책도 그런 '딴 생각'들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네요." 책은 다양한 '딴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비정규직 과학자 심채경, 김영하와 이기호를 즐겨 읽는 독서가 심채경, 두 아이의 엄마 심채경, 그리고 우주를 사랑하는 천문학자 심채경의 생각들이 모두 담겼다.

책 제목도 이채롭다. 천문학자라고 하면 다들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연구실에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심채경을 널리 알린 것도 이런 연구였다. 2019년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는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다음 50년의 달 탐사를 이끌 젊은 과학자 5인'에 그를 선정하고, '토양 탐정'으로 호명했다. 달 표면의 풍화작용에 대한 통계적 분석에 특히 주목했다. 특집 기사에서 네이처는 "달 탐사선이 착륙할 땅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심채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그의 문학적 재능이다. 문과라기엔 너무 과학적이지만 그렇다고 이과라기엔 너무 감성적인 글들이 책 곳곳에서 빛난다. 지구에 대한 감각적 묘사엔 문과생들이 빠져들고, 우주에 대한 정확한 설명엔 이과생들이 눈을 반짝인다. 출간된 지 겨우 보름을 넘었을 뿐이지만 호평이 이미 자자하다. 초판이 벌써 2쇄까지 다 나갔고 3쇄까지 합하면 1만 부가 찍혔다. 출판사는 조만간 증쇄도 기대하고 있다.

'문과 성향'이었던 고등학생 심채경이 전향한 배경도 독자들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처음엔 별이 아닌 '별 보는 사람들'을 좇아서였다. 첫번째는 어린 시절 "천문학과에 가겠다"며 직접 찍은 별 사진을 보내줬던 중학교 동창이었고, 두번째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연주시차를 가르친 지구과학 선생님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와 교수님도 모두 마찬가지 얼굴이었단다. 무엇이 이들을 그리도 즐겁게 하는지 궁금해 한 발짝 내딛었던 심채경은 이젠 자신도 별을 좇는다. 그의 고백은 이렇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그렇게 심채경은 천문학 한길을 걸었다.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우주탐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후연구원·학술연구교수로 일했다. 지난해 여름부턴 천문연으로 자리를 옮겨 미국 항공우주국과 공동 진행하는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일견 완벽한 '천문학자 커리어'건만 외려 그는 "삶을 따라 흘러 다니며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선택을 할 때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맘에 들었어요. 또 기회가 주어지면 별 불만 없이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다만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집착합니다. 집중하고 몰두하는 시간이 좋아요."

학자들 고군분투에도 국내 천문학 연구기반은 아직 취약하다. 천문학과가 있는 대학교는 서울대·연세대·경희대·세종대·경북대·충남대·충북대 등으로 손에 꼽고, 천문학자 수도 일본의 5분의 1 수준이다. 학생들을 모아 달라고 '천문학 홍보'를 부탁하니 심 작가는 "선동하면 안 돼요"라고 미소 지으며 답했다. "본인이 좋아서 왔을 때 행복한 곳이기 때문에 누구의 꼬임에 넘어가 오시면 안 됩니다. (웃음) '저기 가면 돈 많이 벌어, 혹은 유명해져'가 아니라 천문학 자체가 좋아서 오는 분들이 많길 바랍니다.“

별을 얘기할 때마다 심채경의 눈이 별처럼 환하게 빛을 냈다. 그는 천생 천문학자였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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