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노래를 들어 본 적 있나요?

2021. 3. 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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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전시장 가운데 뗏목이 하나 떠있다.

어슴푸레한 조명을 받아 형체가 드러난 뗏목은 작은 방이다.

작은 방 밖은 깊은 바다요, 내 한 몸 온전히 의지할 이 공간은 세상을 표류하는 뗏목이다.

'웅', '핏핏핏', '뿌루루루' 하는 소리는 뗏목과 같은 작은 방을 돌아 멀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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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고민
어둠은 깊은 바다,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작은 뗏목은 그저 표류할 뿐이다. 8종의 고래 노래가 이 바다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홍이현숙, 여덟 마리 등대, 2020, 스피커 8대(사운드 13분 1초), 가변크기 [사진=아르코미술관]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어두운 전시장 가운데 뗏목이 하나 떠있다. 어슴푸레한 조명을 받아 형체가 드러난 뗏목은 작은 방이다. 한 사람이 몸을 온전히 누일 만한 좁은 공간에 앉은뱅이 책상이 놓였다. 바닥엔 예의 노란 장판. 뜨끈한 온돌이 들어올 것 같은 느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면 꿀렁하고 움직인다. 작은 방 밖은 깊은 바다요, 내 한 몸 온전히 의지할 이 공간은 세상을 표류하는 뗏목이다.

쓸쓸해진 마음을 붙잡고 어둠을 바라보니 깊은 노래가 지나간다. '웅', '핏핏핏', '뿌루루루' 하는 소리는 뗏목과 같은 작은 방을 돌아 멀리 사라진다. 태평양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고래들의 노래다. 홍이현숙(63)작가는 "MBARI(몬터레이만 아쿠아리움 연구소)가 녹음한 고래 8종의 데이터를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변형한 것이다. 선박과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소음에 고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심한 경우 길을 잃고 목숨마저 위험하다"며 "지구에 우리만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함께 하고 있음을 느껴보길 바랐다"고 설명한다.

중견작가 홍이현숙의 개인전 '휭, 추-푸'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에서 열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동시대 미술계에서 예술적·사회적 의제를 다뤄온 작가를 선정해 전시개최를 지원해 왔다. 올해 선정작가인 홍이현숙은 가부장적 시선에 저항하는 퍼포먼스와 영상, 설치작업을 계속 해 왔으며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홍이현숙, 석광사 근방, 2020, 단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45초 [사진=아르코미술관]

전시엔 고래 8종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여덟 마리 등대' 외에도 신작 영상 '석광사 근방',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각각의 이어도'가 걸렸다. 또한 지난 작업을 망라하는 작은 회고전 형식의 아카이브도 함께 마련됐다. 지난 2004년 외할머니의 이름을 적는 관객 참여형 작업인 '외할머니의 이름을 기억하세요?'도 걸렸다. '외할머니-어머니-나'로 이어지는 모계 가족도는 여전히 신선한 울림을 준다. 7년의 시간에도 우리사회의 가부장은 공고함이 느껴진다.

신작 전반을 꿰뚫는 키워드는 '공존'이다. 시작은 늘 인간이다.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자연은 그저 조용히 사라져갈 뿐이다. 작가는 '공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재개발로 살 곳을 잃어가는 고양이들을 기록한 '석광사 근방'에서 작가는 고양이와 이야기하기 위해 지붕위에 올라가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한다.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제스쳐다. 석광사에서 산신이 타고다니는 호랑이상을 올라타고 길고양이를 만나러 떠난다. "같은 고양이과 인데도 호랑이는 영물, 길고양이는 동정과 혐오의 대상이다. 인간의 편견이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파괴가 자연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돌고 돌아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공간을 파괴하고 있음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간의 행동이 위축된 2021년에 홍이현숙의 행동하고 소통하는 작업은 새로운 연대와 공생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타진하고 있다. 전시는 3월 28일까지, 온라인 사전예약을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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