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2021. 3. 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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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희수 전 하사의 비극이 사회적 타살인 이유-서론

[미디어오늘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국가인권위원장, '당당한 군인' 애도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트랜스젠더 여성인 고(故) 변희수 전 하사의 비극은 '사회적 타살'로 규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성적 지향성의 차이 때문에 차별이 자행되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언론과 유관 단체 등에서 애도와 제도적 개혁을 촉구하는 가운데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4일 <당당한 군인이었던 故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애도하며>라는 제하의 성명을 통해 변 전 하사는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군인으로서의 직무를 다하고자 했다며 "이런 슬픔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 정비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미디어스 2021년 3월4일).

최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성정체성) 트랜스젠더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알려지자 성명을 내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혐오와 차별로부터 보호받아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국회의 평등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성명에서 최 위원장은 “이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멈추어야 한다”며 “고인의 죽음은 성소수자가 겪는 혐오와 차별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 성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고(故) 변희수 전 하사. 사진=노컷뉴스

인간의 성적 정체성은 유전자나 호르몬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타고난 체질과 같은 것으로, 개인적 선택이나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며 후천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제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폐기되고 있다. 성적 소수자는 이성애자 등과 동등한 인권과 권리를 누려야 할 존재로서 관련법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 결혼의 경우 네덜란드가 2000년 처음으로 합법화한 데 이어 2021년 3월 현재 유럽 일부 국가와 북남미, 호주, 대만 등 29개 국가가 그 뒤를 따랐다. 성적 지향성에 대한 지구촌 차원의 개선 작업은,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가 증가 추세인 것처럼 매우 전향적이다. 그에 따라 많은 나라에서 그 사회적 평가나 정치적 권리 등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 명백하다. 이런 점을 살필 때 한국 사회도 일부 종교의 교리만을 앞세우거나 정치적 입장 등에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한 나라 대만 등 29개국

유엔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및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2007~2017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아홉 차례 권고했다. 그러나 이 법은 2021년 3월8일 현재 제정되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가 2007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삼고 법무부가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일부 종교 세력이 반대하면서 성적지향, 학력, 출신 국가 등 7가지 항목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뺐다가 결국 폐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2012년 대선 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지만 2017년 대선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후퇴한 입장을 보였다. 정치권이 사회적 약자를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도록 방치하는 것은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것으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이 조롱과 폭력의 대상이 되면서 존재 자체를 위협당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이는 인권 보호에 바탕을 둔 법치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정부 당국이 성적 소수자의 존재를 공문서에 반영하는 것조차 거부되고 있고 범사회적 차별법이 여전히 제정되지 않아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를 합쳐 부르는 말)가 당하는 고통은 매우 심각하다. 성전환 수술 현역 군인이 강제전역을 당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나 트랜스젠더 여성의 대학 입학 포기 등은 정부의 무책임, 무 소신에 그 뿌리가 있다 하겠다. 정부와 국회 등이 성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에 굴복해 국제사회의 인권존중 요구나 상식에 등을 돌리는 것은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한국정부, 성 소수자 존재를 공문서에 반영하는 것도 거부

정부와 국회 등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에 굴복해 국제사회의 인권존중 요구나 상식에 등을 돌리는 것은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로 되어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규범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권과 평등의 시계 바늘이 후퇴하는 한심한 모습이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이나 여러 지역의 인권조례가 지나 수년 동안 잇달아 폐지된 것도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일부 세력의 반대가 그 원인의 하나였다. 공직자들이 소신 없이 정략적 이해관계에 휩쓸리거나 거래를 한 결과다. 반대 의견에 대해 과학적 사실 등을 앞세워 적극 설득하고 관철시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분통이 터진다. 예를 들면 차별금지법 등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철회하거나 심지어 국가인권위법에 명시된 19개 차별금지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자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촛불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2017년 공공 문서에 '성 평등'이란 단어를 사용하려다 야당 등의 반대가 자심하자 결국 포기하고 '양성평등'으로 기재했고 서울시교육청도 2018년 3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해소하겠다며 '교직원 양성평등 조직문화 확산을 위한 실천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성 평등'은 성적 소수자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양성 평등'은 성적 소수자를 배제한 개념으로 흔히 쓰인다. 성적 지향이나 그 정체성은 후천적인 선택 사항이 아니고 선천적인 것으로 과학이 밝히는데도 후진 사회는 이에 눈을 감는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출생의 5-10%는 성적 소수자로 태어난다.

서울시가 2015년 6월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전시라는 이유로 사실상 지원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이 '앞으로 성소수자 관련 행사지원을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해당 부서에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권고했지만 그 후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정치인 안철수가 최근 성소수자 행사에 대해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한 것도 그냥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공공기관이 성적 소수자를 포함하는 개념인 '성 평등'을 외면하는 것은 사회 전반적인 인권 의식을 후퇴시키는 것과 같다. 정치권이 사회적 약자를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도록 방치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을 외면한다는 의미다.

법과 제도, 정치가 성적 소수자를 외면하는 현실은 방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성소수자 특집을 방영하던 EBS <까칠남녀>가 2018년 초 프로그램 자유게시판에 방송을 중단하라는 게시물 수백 건이 게재 되는 등 논란이 삼해지자 방송 횟수를 줄이는 등 조기 종영의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당시 제작진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성소수자 4인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 한다”며 “출연진 4인방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고백을 통해 시청자들의 오해와 편견을 깨겠다”는 의욕을 보였지만 한국 사회가 여전히 막힌 사회라는 것을 모두에게 확인시킨 꼴이 된 것이다. 촛불이 그 청산을 명령한 구조적인 사회 적폐의 하나가 사회적 약자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소수자 증오의 범죄 피해 공포에 시달려

국가인권위가 2017년 자신의 정체성(성소수자·여성·장애인·이주민)과 관련해 발표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성소수자의 84.7%, 장애인의 70.5%, 여성의 63.9%, 이주민의 52.3%가 '어느 정도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으며 증오범죄 피해 우려에 대한 질문에는 성소수자가 92.6%, 여성의 87.1%, 장애인의 81%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는 자신의 정체성 등으로 인해 받게 되는 비난의 두려움보다 증오범죄 피해 우려가 오히려 더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에서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 된 것은 자살이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로 '생지옥'이라 불리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 사회는 '나도 살기 싫고 후손이 살아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의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이는 법과 제도, 사회적 의식의 변혁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각 교정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3월4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노컷뉴스

변희수 전 하사나 김기홍 공동조직위원장 등에게 고통을 강요했던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제도나 관행은 전체사회의 차별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정면에서 다뤄야 할 주제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국내 담론은 일부 종교인의 사견이나 정치적 득실에 따른 견해가 주로 기사화되고 있는 한심한 상황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에서 일부 세력은 성소수자를 헐뜯으며 차별금지법이나 학생인권조례의 합리적 추진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이 보편타당한 인권보호,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기는커녕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후진적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대단히 부끄럽고 추한 일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공유되어야, 차이가 차별의 구실이 되고 그것이 제도화 되어 있는 인권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있고 진보사회의 건설이 가능할 것이다. 국내 일부에서 자칭 진보라는 인사가 성소수자문제에 대해 수구적 태도를 가지고 있거나 페미니스트가 성소수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힙을 합쳐서 다수의 횡포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DNA 차원의 자연적 현상으로 보아야 하고 어떤 이유에서 든 차이를 차별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취지에서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학술지에 실린 관련 연구논문의 내용을 취사선택해 15회 정도의 연재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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