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출 혁신을 기대한다
1년 전 무역업계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COVID-19) 위기를 마주했다. 중국산 부품 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미국 백화점과 쇼핑몰들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해 우리 수출 기업이 타격을 입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했다.
다행히 무역금융, 물류, 비대면 마케팅 등에 대한 정부지원과 수출기업들의 시장개척 노력이 어우러져 작년 9월부터 수출이 플러스로 전환했고 올해도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라는 잇따른 위기 속에서도 우리 수출은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먼저 수출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이 다양해졌다. 한류·방역·홈코노미(홈과 이코노미 합성어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모든 소비를 해결하는 형태) 분야 기업들이 새롭게 수출전선에 뛰어들었다. 진단키트와 위생용품에 대한 해외 수요 증가로 관련 내수기업들이 수출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또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춘 본글로벌(Born Global) 스타트업 또한 수출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했다. 중동에서 컨테이너를 활용해 신선채소를 재배하고 현지 호텔, 식당 등에 납품하는 기업, 유럽 각국의 학교에 코딩 로봇을 수출하는 기업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수출 품목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수준도 높아졌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K팝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음반과 영상물 수출액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 기업에 2조원에 인수된 하이퍼커넥트의 영상 채팅 앱 아자르는 지난해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매출 기준 6위를 차지했고 230개국에서 19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기존 산업 내에서도 선제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미래형 반도체, LNG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 미래차나 신재생에너지용 프리미엄 철강, 전기차 배터리 등이 새로운 수출 주력제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출방식에도 혁신이 일고 있다. 소비트렌드 변화와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국가간, 산업간 경계가 붕괴되고 있어 글로벌 합종연횡은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중소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파트너와 동반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외 각국에 네트워크를 보유한 상사, 건설사, 동포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현지 진출에 마중물 역할을 해주고 있다. L상사는 인도네시아 파트너 대기업들을 활용해 중소기업 제품의 현지 실증 테스트를 돕고 있다. D건설사는 베트남의 건설 인프라를 활용해 한국 스타트업들의 디딤돌 역할을 한다. 협력의 방식도 수수료나 차익을 챙기는 방식보다는 투자를 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 등으로 바뀌는 추세다.
수출 혁신이 가속화되려면 기업들의 피나는 기술·제품 개발 노력과 함께 정부 정책 및 시스템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
먼저 수출 또는 무역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 맥킨지는 2019년 '세계화의 전환'이라는 보고서에서 상품 교역과 노동비용에 기반한 교역 비중은 감소하고 서비스교역과 지식에 기반한 교역 비중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역 관련 법규들은 여전히 디지털무역, 서비스무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형태의 국가 간 거래들이 통계에 정확히 반영되지 못할 경우 정부의 무역정책은 그 기초가 흔들릴 수 있다.
무역금융도 변화가 필요하다. 뉴욕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는 쿠팡은 아직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적만 보면 국내에서 금융지원을 받기 어렵다. 매출이나 수출 실적은 미흡하지만 혁신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지원 받을 수 있게 무역금융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실적뿐만 아니라 미래 가능성을 반영하고 지원방식도 대출과 보증에서 투자까지 확대되도록 다변화가 필요하다.
무역의 중심이 상품에서 서비스로 이동하는 트렌드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유럽, 중국 등은 디지털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논리 개발과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디지털 경제 흐름과 기업들의 비즈니스 실태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통상전략을 수립하고 글로벌 디지털 통상규범 제정 과정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위기가 있을 때 수출은 언제나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기업과 정부가 각자의 위치에서 혁신을 거듭해 다시 한 번 수출이 한국 경제의 희망이 되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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