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어디까지 외주를 줄 것인가?

한겨레 2021. 3.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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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접할 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외주의 문제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주변 여성들에게 외주 주었는가? 어릴 적 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꼬추 떨어진다"고 혼냈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외주화가 반드시 나쁜가? 나는 내 일에 집중하고 요리, 빨래, 청소 등은 남에게 맡기는 건 분업으로 볼 수 있다.

외주 주기를 멈추면 우리의 삶은 작아지고, 느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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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접할 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외주의 문제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주변 여성들에게 외주 주었는가? 어릴 적 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꼬추 떨어진다”고 혼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해준 밥, 학교에서는 조리사분들이 해준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는 “이모”가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준 밥상을 헐값에 소비했다. 사회가 여성의 몫으로 배정한 노동은 평가절하당하기 일쑤다. 그 불평등을 인지하면, 외주화가 특권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당연히 베풀어준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 나의 페미니즘은 외주 주었던 노동을 스스로 해나가는 연습이다. 요리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주변을 돌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외주화가 왜 나쁜가? 우리 모두 외주를 주고 있지 않은가?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이상 외주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장 보고 요리까지 직접 다 해도 식재료 생산과 배송까지 하진 않는다. 전국민이 농부가 될 수는 없다. 사회 유지를 위해 약간의 외주화는 필수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외주화가 반드시 나쁜가? 나는 내 일에 집중하고 요리, 빨래, 청소 등은 남에게 맡기는 건 분업으로 볼 수 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문제없다. 불평등의 측면에서 외주화는 위험해도 안고 가야 할 숙제다. 완전히 폐기할 수 없다.

하지만 기후생태위기를 고려하면 외주화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사치다. 이곳이 바로 페미니즘과 비거니즘, 생태주의가 만나는 지점이다. 모든 외주화의 끝에는 자연이 있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는 비인간 동물과 삼림, 화석 연료 등 천연자원에 대한 착취 위에 서 있다. 소, 돼지, 닭의 고통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석탄, 석유, 가스의 환경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갈 수 있는 구조다. 비인간 동물의 엄연한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화석 연료라는 유한한 자연 자본을 무한한 소득처럼 여긴다. 만약 노동으로 인정한다면, 자본으로 여긴다면, 이토록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연’이라는 하청업체의 피와 땀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이러한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 인간 중심의 근대문명 밖에 있다고 정의된 것들에 대해서도 응당한 가치를 책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싼값에 고기와 우유와 계란을 먹을 수 있어서는 안 된다. 비인간 동물을 주체로 인정하는 순간, 현재의 노예적 착취 구조는 정당성을 잃는다. 축산업의 환경, 보건 비용을 오롯이 부과하면 동물 사체와 부산물의 가격은 폭등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탄소배출이 기후와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값을 매긴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석탄발전소는 가동을 멈출 것이다. 우리의 하청업체 ‘자연’은 이미 도산했다. 인수공통감염병과 이상기후로 답하고 있다. 이제는 외주를 주어서도 안 되고, 줄 수도 없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 모두 시골에 가서 자급자족할까? 생활양식과 사회구조의 총체적 대변환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나는 외주화에 대한 재고가 그 시작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취하는 것들이,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처럼,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 인간이 지구로부터 받는 돌봄이, 어릴 적 모부님이 베풀어준 사랑처럼, 무한해 보이지만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 외주 주기를 멈추면 우리의 삶은 작아지고, 느려질 것이다. 경제 성장도 끝이다. (죽은 지구에는 경제도 없다.) 대신 삶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 윤리적이고 건강한 채식 한끼에, 미세먼지 없이 맑은 공기에, 이상하지 않은 날씨에 감사한다. 나는 그저 건강한 지구에서 건강한 동물로서 제명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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