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만 해도 '저기 여군 지나간다' 수군거렸댔죠"

박병수 2021. 3.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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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의 날]
여군 첫 상륙함 함장 안미영 중령

군내 간부 중 여군 비율 7.5%뿐
함께 임관한 동기 절반 군복 벗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지만
남녀차별 군대만큼 적은 곳 없을 것"
안미영 함장이 지난 3일 성인봉함 함교에서 지휘하고 있다.

한국 여군은 1950년 낙동강 방어선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던 즈음 부산에서 발족한 여자의용군 교육대를 모태로 한다. 이처럼 71년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군은 창설 이후 한참 동안 활동 범위가 행정·간호 등 몇몇 비전투 분야로 제한되는 등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렀다.

철옹성 같았던 성 역할 분담에 틈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다. 1997년 처음으로 공군사관학교에 여생도 입교가 허용됐고, 육사와 해사가 뒤따랐다. 2002년엔 육군에서 첫 여군 야전부대 소대장이 배출됐고, 해군에선 첫 함정 근무자가 나왔다. 이듬해 공군에선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배치됐다.

그로부터 약 20년의 기간이 지나는 동안 이제 여군은 야전부대 여단장(육군 대령)과 전투함 함장(해군 중령), 비행대대장(공군 중령)을 배출하며 남군과 함께 당당히 국토방위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성장했다.

여군들이 여기까지 오도록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까.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꿈꿀까. 20여년 전 개막된 ‘여군 시대’의 맨 윗세대인 안미영(40) 해군 중령을 3일 전화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안 중령은 2003년 해군 학사사관(OCS) 과정을 거쳐 소위로 임관한 뒤 광개토대왕함 전투체계보좌관, 성인봉함 갑판사관, 3함대 32전대 321편대장, 해군본부 기참부 기지발전기획담당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7월엔 성인봉함(2600톤급) 함장에 취임하면서, 여군 첫 상륙함 함장으로 주목받았다.

안미영 함장이 지난 3일 성인봉함 함교에서 부대원들과 전술토의를 하고 있다.

안 중령은 “처음 임관할 즈음엔 여군이 거의 없어서, 어딜 가도 주위에서 ‘저기 여군이다’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서든 일하면서 조직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격세지감을 토로했다. 실제 1999년 2085명으로 전체 간부의 1.4%였던 여군은 지난해 말 기준 1만3922명(간부의 7.5%)으로 늘어났다. 국방부는 2022년까지 여군 비율을 8.8%로 더 늘릴 계획이다.

안 중령은 왜 여군이 됐냐는 물음에 지체 않고 “어릴 때부터 군인이 좋았다”고 답했다.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는 안 중령이 초등학생 시절 방학이면 매일 아침 깨워서 1시간씩 구보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지만, 애초 군인이 될 운명이었는지 “그래도 좋았다”고 한다. 안 중령은 고등학교 졸업 뒤 사관학교 입학을 원했지만 ‘평범한 여자다운 길’을 가라는 부모의 반대에 부닥쳤다. 4년 대학 졸업 뒤에도 여전히 군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어 해군 학사사관 과정에 도전했다. 부모는 이번에도 역시 반대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을 가고 싶다”는 안 중령의 설득에 넘어갔다. 이제 부모는 딸이 군인이 된 것을 너무 자랑스러워한다.

여군이어서 겪은 차별이나 어려움은 없었을까. 안 중령은 “군대만큼 남녀차별을 느끼기 어려운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군은 능력에 따라 인정받기 때문에 기회도 공평하다는 것이다. 안 중령이 지휘하는 성인봉함의 승조원 100여명 중 여군은 9명뿐인데, 대부분 남군이지만 지휘에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안 중령은 “오히려 여성이어서 지휘에 더 유리한 면이 있다”며 “부하 수병들에게 엄마처럼 더 부드럽고 온화하게 접근할 수 있고 수병들도 잘 따른다”고 말했다.

성인봉함 함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안미영 함장.

그래도 군인 생활이 만만할 리는 없다. 임무가 많을 때는 한달에 보름 이상을 바다에서 보낸다. 주말이나 명절에도 비상대기해야 하는 등 긴장과 통제가 이어진다. 안 중령과 함께 임관한 여군 학사사관 동기 10명 중에도 벌써 5명이 군복을 벗었다고 한다.

안 중령은 특히 이제 여섯살인 딸과 남편 등 가족과 늘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다고 한다. 그는 “출산·육아휴직 1년을 빼고는 가족과 함께 산 적이 없다”며 “지금도 주말에만 남편이 딸을 데리고 내가 근무하는 진해로 와서 한번씩 본다”고 했다. 안 중령은 “며칠 전 딸의 유치원 입학식에도 못 가봐서 남편이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며 “그래도 딸아이가 엄마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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