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尹 사라지니 도둑들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

2021. 3. 8.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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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부인 김건희 씨가 운영하는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다. 2021.3.7/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 비리를 파헤쳐 온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자 기다렸다는 듯 수리했다. 친정권 검사들의 유임·영전 인사를 반대했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도 함께 수리했다.

윤 총장이 떠나자 검찰 조직을 범죄 소굴인 양 비난해 왔던 여권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을 위해 밀어붙이던 수사청 설치법 발의도 슬그머니 미뤘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처럼 소란을 떨더니 윤 총장이 사퇴하자 “현시점에서 급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윤석열 한 사람을 무력화하기 위한 위인설법이었다는 얘기다.

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이 사라진 세상, 도둑놈들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검찰이 사라지니 온 나라가 평온하다. 이럴려고 검찰 팔다리를 분질렀구나”라고 했다. 지난 한 해 문 대통령은 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앞세운 윤석열 몰아내기에 국정 에너지의 태반을 쏟았다. 이제 그 목표를 이루자 정권 전체에 훈풍이 분다.

사정 기관 지휘부를 온통 ‘정권 편’ 일색으로 만드는 작업은 곧 완성된다. 김진국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변 부회장, 노무현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이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이용구 차관은 윤석열 무력화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 김창룡 경찰청장과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 역시 노무현·문재인 청와대 출신이다. 차기 검찰총장에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정권의 충견들이 거명된다.

윤 전 총장이 파헤치던 정권 비위 사건들에는 문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30년 친구의 당선이 소원'이라는 대통령 한마디로 울산시장 선거 공작이 이뤄졌다. 청와대 비서실 내 일곱 조직이 후보 매수, 하명 수사, 공약 지원 등 선거 범죄에 군사작전 식으로 뛰어들었다. 대통령 친구는 당선됐고 야당 후보 사무실을 급습한 경찰 책임자는 여당 국회의원이 됐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13명이 기소됐다. 공소장에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나왔다. 탄핵될 수도 있는 중범죄다. 기소된 지 1년이 넘었지만 검찰의 추가 수사는 대통령 앞에서 멈췄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도 ‘언제 폐로하느냐'는 대통령 말에서 출발했다. 이 말을 들은 장관은 “너 죽을래”라는 말로 겁박했고, 직원들은 조작 은폐를 위해 주말 사무실로 나와 원전 자료를 불법 삭제했다. 그 실무자들만 구속되고 수사는 청와대 앞에서 멈춰 섰다.

윤 총장을 몰아 낸 문 대통령은 이제 발 뻗고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홀가분한 심정일지 모르겠다. 대통령 주변을 뒤지겠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검사들에 대한 걱정은 적어도 임기 말까지는 안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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